2018년 4월 18일 수요일

Good bye my friend

어제 하루는 갑자기 회사에 가기 너무너무 힘들고 귀찮아 아침에 급히 휴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말에 IKEA에 가서 이전에 봐 둔 가구들을 사다 하루 종일 조립하고, 주말 사이 우박이 쌓여 만들어진 얼음들 깨고 부수고 치운 덕에 오래간만에 어깨와 허리가 욱신욱신 하네요. 그런데 어깨와 허리 보다 마음이 더 아픈 일이 생겼습니다.

 가구 조립을 마치고 드라이브 웨이의 얼음을 다 치운 후 샤워를 하려는데, 페이스북 메신져에서 띠링~ 하고 새 메시지를 알려옵니다.

 "어라? 이 친구 요즘에 연락해도 답장도 없어서 전화번호도 바뀌고 페북도 끊은 줄 알았는데 왠일이지?"

  연락이 온 친구는 매우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가진 저와 비슷한 또래의 (고교시절 이야기를 할 때 연도를 보니 3~4살 정도 많은 것으로 추정) 일본인 친구입니다. 성격이 워낙 조용하다보니 같이 어울려 놀은 기억은 딱히 없지만, 짧게나마 1년간 학교를 다니며 모든 전공 과목을 같이 들었고, 모든 과목의 팀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친구죠. 평소에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였지만, 제가 토론토에 살 때에는 한두달에 한 번 정도 서로 만나 커피 한잔을 하며 짧게나마 서로의 안부도 묻고 근황 이야기도 했었고, 제가 옥빌로 이사를 간 이후에는 간혹 이메일이나 페북 메신져,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반년 정도 전에 이 친구가 위니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그 이후 한동안 연락두절 상태였죠. 사기꾼이 아니라 편하다고??? 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제가 다녔던 학교에는 특정국가 출신 학생이 과반수 이상인데, 그 특정국가 출신 학생들 중 다수가 그런 특징이 좀 있었습니다. 팀 프로젝트에서 각자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에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실력과 능력의 과대포장에는 뛰어나 쓸데없이 많은 일을 하겠노라고 commitment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를 지키지 못하죠. 설상가상으로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기면 뛰어난 공작능력으로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문제로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고 있다고 포장을 잘 하다보니 놀 때에는 따로 가리지 않고 다 같이 놀았어도, 프로젝트 팀을 꾸릴 때에는 저와 비슷한 문화/성향을 지닌 홍콩/대만/중국/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 출신 학생들이나 우리의 형제국가인 터키 출신 학생들과 주로 했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over commitment나 블러핑은 하지 않으니까요. 특히 30대 이상 아저씨들과 주로 팀을 했는데 실력의 정도를 떠나 30대 이상인 경우 최소한의 책임감이 있어 같이 일을 함에있어 서로 불편한 일이 없었거든요.

 사실 이 친구의 성격은 저와 썩 맞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안그래도 저의 영어 실력이 한참이나 부족한데 이 친구 역시 영어를 잘 못해 서로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야기 하다보면 대화의 맥이 끊기고 답답하기 그지 없습니다. 영어 네이티브이거나 잘하는 친구와 이야기 할 때엔 제가 개떡같이 이야기 해도 상대방이 찰떡같이 알아듣기도 하고, 제가 모르는 어휘나 표현이 나와 이해를 못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고 보다 쉬운 어휘나 표현으로 rephrase를 해 주거나, 정 안되면 그 단어의 뜻을 설명 해 주어 상대방은 좀 귀찮을지언정 대화가 이어지는데 반해 이 친구와 영어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서로의 모국어 억양과 발음이 달라 쉬운 단어도 서로 못알아듣기도 하고, 영어도 못하는 것들이 그 와중에 각자 자신만 아는 어휘나 표현이 있어서 서로 이해를 못하는데, 다른 동의어로 대체하여 rephrase 할 능력은 없다보니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는 경우도 참 많죠.
그래도 1년간 모든 전공과목들을 같이 듣고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같이 잘 지냈습니다. 학교에서 팀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각 과목마다 마음에 맞는 친구가 2-3명 정도는 있어서 같이 팀을 꾸려야 편한데, 이 친구는 실력이 아주 뛰어나 제가 편하게 프로젝트에 얹혀 갈 수 있게 해주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성실했고, 자기 실력과 할 수 있는 일의 범위에 대해 블러핑도 안했고, 저와 나이도 얼추 비슷했던지라 계속 붙어 다녔죠.

 첫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가 FSWP로 영주권 신청을 할 때에 저는 이 친구에게도 졸업을 기다리지 말고 FSWP 지원을 해 볼것을 권유 했었습니다. 이 친구도 어학 점수만 6.5 이상 나오면 FSWP로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친구는 1년이 조금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 패스웨이를 한 후에 시험 없이 학교에 입학을 한 친구입니다. 1년넘게 패스웨이가 걸린만큼 원래 영어를 잘 하지 못하기도 했고, 한 번도 영어 시험을 본 적이 없던터라 IELTS 시험을 보는 것에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더군요. 그래서 시험보기 무섭다며 제가 FSWP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아갈 때 차일피일 미루고 또 미뤘습니다. 그러다 그 해 가을 제 FSWP 이민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본 이 친구는 드디어 IELTS 시험 준비를 하면서 시험 예약을 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FSWP 67점은 안되었지만 거의 그에 근접할 수준의 성적표를 받은 시점에, 그 해 SW Engineer NOC의 FSWP 티오가 마감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다음 해를 위해 그 친구는 계속 시험을 치뤘지만 2015년이 되어 Express Entry에 대한 모든 것이 알려진 이후에는 사실상 FSWP 이민을 포기하고 영어 시험 준비도 중단을 했었습니다.

 결국 저는 입학 후 1년이 안되어 영주권을 받았고, 바로 회사에 나가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 친구는 원래 계획대로 PGWP를 위해 계속 학교를 다녀야만 했습니다. 이 친구가 하던 프로그램은 코업이 있는 프로그램이였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컬리지 학생들이 코업 일을 구했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코업을 구하지 못해 중간에 강제 방학을 맞이하기도 했고, 결국에는 졸업 전까지 코업을 못하여 프로그램도 논 코업 프로그램으로 변경하여 졸업을 했죠. 그렇게 졸업을 하고 이제 진짜 일을 구할 시기가 되었는데, 이 친구의 캐나다 취업운은 졸업을 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제가 보기엔 이 친구보다 실력도 부족하고 영어를 더 잘하지도 않는 다른 친구들도 결국엔 어떻게든 취업을 했지만, 이 친구는 면접 과정까지 가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저희 회사에 오픈된 포지션과 매칭이 되기에 이 친구를 추천하려 했는데 HR에 연락을 하니, 방금 전에 인터뷰 본 지원자를 채용하기로 해서 해당 포지션은 지금 close 될 것이라고 해서 인터뷰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2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흐르고 흘러 힘겹게 전공 관련 일자리를 구했는데, 그 친구의 PGWP의 남은 기간은 1년이 채 안된 시점이였습니다. 이 친구가 원래 생각했던 CEC를 위해서는 (또한 다른 대부분의 이민을 위해서는) 1년 이상의 경력이 필요한데, 남은 워크퍼밋 기간을 풀로 다 채워도 1년 경력이 안나오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 때부터 이 친구는 저에게 종종 연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이런 상황에서 가능한 이민 프로그램을 아는지, 그런 케이스를 본 적이 있는지 많이 물어봤었습니다. 정확한 기간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1-2달 정도 짧은 기간이였던 것 같은데, 이 친구는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의 주정부 이민 지원 등 여러가지 가능성들에 대해 이러저리 알아 보았지만, 1년 미만으로 남은 현재의 워크퍼밋으로는 토론토에서 영주권을 받을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어느날 갑자기 위니펙으로 날아갔죠. 위니펙에서는 6개월만 일을 하면 주정부로 이민을 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말이죠.

 처음 위니펙에 간 이후에는 간혹 직장은 구했는지, 이민은 계획대로 잘 진행 중인지 안부차 연락을 하면 "여긴 벌써 겨울이 시작되나봐", "토론토는 참 따뜻한 도시였어" 등 조금 다른 이야기들의 답변이 오더군요. 그러더니 어느 순간부터는 메신져로 연락을 해도 답장이 없고,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마 전화는 이미 위니펙으로 넘어가면서 지역번호가 바뀌면서 번호가 변경되었을 것이라고 예상은 했고, 메신져는 페북을 끊었나 생각했죠. 그렇게 썩 친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저도 힘들었던 학생시절에 함께 했던, 그리고 한동안 연락이 두절되어 궁금했던 그 친구에게 오래간만에 연락이 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온 메시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메시지였습니다.

 "나 7월 말에 일본행 '편도' 항공권을 예약 했어"

저의 손가락들은 한동안 핸드폰 화면 위에 머물렀습니다. 그냥 일본행 항공권을 샀다고 하면

 "휴가가니? 잘 다녀와"

 "너 고향이 어디라고 했지?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와"

등의 인사라도 할텐데, '편도' 라는 이 한 마디가 지금 이 친구의 상황에 부정적인 모든 것을 내포하고 심하게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구지 애둘러서 '편도' 티켓을 샀다고 애둘러 말 한 상황에서 스스로 아픔을 꺼내기 전에 제가 들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애둘러서 이상한 소리들만 한동안 한 것 같아요.

 "Is it still cold in Winnipeg? Entire my village became arena due to frozen rain during last weekend."

 "We should meet once again sometime. Let's drink Sake and Biru at that time."

 "Try to visit gorgeous places before you leave. Have you been Banff?"

 "I think you must see Aurora at once."

 ...

 얼추 계산을 해보니 이 친구가 15년 여름 학기를 마치고 졸업을 했으니, 올해 8월 즈음이면 PGWP가 만료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작년 9월인가 10월 즈음에 위니펙으로 이사를 갔던 것이고, 현재는 당장 오늘 취업을 한다 해도 워크퍼밋 만료 전 까지 매니토바에서 6개월의 경력을 만들 수 없으니 포기를 한 것 같네요. 

어쩌다보니 오래간만에 연락을 하는데 서로 정작 하고싶은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서로 변죽만 울리는 상황에서 그냥 진심으로 하고싶은 말 한마디를 했습니다.

 "If you have a chance to come to Oakville or near to Oakville, please contact me. I would like to serve a dinner once, indeed!" 

하지만 제 말에 이 친구가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가 더 마음아픈 말이였습니다.

 "Thank you, but I don't think I will come to Canada again."

저의 빈약간 기억력에 정확히 캐나다였는지 미국이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이 친구는 20대 때에도 이민을 위해 북미에 몇년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고 실패하여 일본으로 돌아간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30대 후반에 (혹은 40대 초반) 재 도전을 했지만 40대가 된 지금 이렇게 다시 한 번 영주권을 받지 못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었으니, 다시는 안올 것 같다는 그의 말은 정말일 것 같네요.

 이 친구는 워낙 말이 느리고, 말주변도 별로 없지만 (처음엔 단순히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영어과목 강사 중 한 분이 일본에서 오랜기간 강사 생활을 하여 일본어를 아주 잘 했는데, 그 분 말에 의하면 이 친구는 일본말도 대화의 템포가 상당히 느린 편이라고 하더라고요) 성실하고 착한 친구였는데... 무언가 질문을 던지면 10-20초 후에나 full sentence를 만들어서 대답하는 그 친구의 화법이 행여 취업 길을 막은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듭니다. 저는 영어를 참 못하지만 그래도 제가 아는 내용이면 비문이더라도 휘릭휘릭 대답은 합니다. 단, 한국말과 비슷하게 주어가 생략된 말은 매우매우 자주 하는 편이고, 시제와 단/복수도 거의 생각 안하고 마구잡이로 말하는 편이며, 심지어 수동/능동 또한 제 멋대로 바꿔 그냥 제 입에 잘 붙는 말을 해버리는 편입니다. '난 내 할 말을 내가 알아서 다 한 것으로 나의 임무를 마쳤으니 너는 니가 알아서 내 말을 이해하는 것으로 너의 임무를 다 하거라.' 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데 이 친구는 대화의 템포는 참 숨 넘어가게 느리지만, 이 친구가 하는 말들을 곱씹어보면 마치 성문 종합영어 예문에서 봤던 것 같은 완성형 문장을 만들어서 하거든요.

 5년 밖에 안된 저의 이민 생활이지만 간혹가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인들이 각자의 모국으로 돌아갈 때면, 그다지 친하게 지낸 사람이 아니더라도 왠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오곤 하는데, 참 헤어짐이라는 것은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이벤트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몰랐는데 이민 생활을 하면서 생긴 허전함이라고나 할까요? 그가 다시 캐나다로 올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고, 저도 딱히 일본에 갈 것 같지도 않으니 앞으로 서로 볼 기회는 없을 것 같지만, 부디 일본에서 세번째로 다시 시작하는 그의 삶에는 어려움이 없이 잘 풀리기를 진심으로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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