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8일 목요일

Work Life Balance - 무너진 워라밸 균형


2달 조금 넘는 기간동안 아무런 포스팅이 없었네요. 그 이유는 제목에서도 보여지듯 그간 저의 Work - Life Balance가 무너져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제 이 문제로 아버지와도 오랫동안 통화를 하며 제 마음을 추스리기도 해보고 스스로 정리를 다시 해 보았는데, 어찌 될 것인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1월 중순 즈음에도 약 2주 가량 맥시코 칸쿤으로 휴가를 떠나면서 휴가기간 내내 스스로 현재 상황에 대한 파악과 미래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과 계획을 세워보았지만, 사람 일이 뜻대로 되지만은 않다보니 휴가복귀 후 채 1달도 되지않아 가득 충전했던 저의 삶의 에너지는 다시 고갈되었고, 저의 의지도 다시 무너져 버렸으니까요.

그래도 어제 아버지와 오랜 시간동안 통화를 하고, 또 혼자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전까지는 "빨리 탈출하고싶다" 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지만, 조금 더 구체화 시킬 수 있었고 보다 근본적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다시금 정리한 저의 워라밸이 무너진 이유를 찾자면 제가 캐나다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던 시기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캐나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스스로 워라밸을 무너트린 채 시작을 했었습니다.
토론토에서 미시사가까지 출퇴근 시간에 교통체증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싫었고, 그 무엇보다 너무나 오래간만에 시작하게 된 개발 업무인지라 스스로에대한 자신이 없었던 시기였기에 일반적인 출근시간보다 일찍 출근을 했고, 일반적인 퇴근시간보다 늦게 퇴근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훗 날 뒤돌아보니 매일매일 남들보다 2-3시간 일찍 출근해서 1-2시간 늦게 퇴근했기에 한나절 정도는 더 일을 했던 셈입니다.

그렇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한 덕분에 부족했던 실력과 지식과 경험의 간극을 많이 채울 수 있었고, 3개월 probation기간을 지남과 동시에 근무조건까지도 수정하면서 "짤릴 수도 있다" 라는 불안감은 해소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사를 가기 전 까지는 러시아워 교통체증이 싫어 계속해서 이러한 패턴을 유지 했었습니다.

이 때 이미 아침 6시 경에 출근을 해서 오후 7시 경에 퇴근을 해왔기에 정상적인 밸런싱은 아니였지만, 다시금 찾은 저의 일이 너무나도 즐거웠기에 느끼지 못했었죠.

그리고 회사에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간 후에는 보다 정상적인 근무시간 체제를 유지 했습니다. 워낙 일찍일어나는 편이기에 보통 6시 출근, 늦어도 7시 즈음에 출근을 하였고 대신 퇴근은 보통 3시즈음 했습니다. 나중에 car pool buddy가 생긴 이후에는 8시 출근, 4시 30분 퇴근이 일상적이였죠.

하지만 제버릇 남 못준다고 매일은 일 평균으로 보자면 약 1 - 1.5시간 가량은 공부나 개인 프로젝트, 혹은 업무 업무관련된 신규 기술을 이것저것 테스트 하는데 시간을 보냈습니다. 안그래도 중간에 5년여의 커리어 공백이 있는데다 남들보다 뛰어난 두뇌를 자랑하는 것도 아니기에 롱런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살았죠.

그 때에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제 스스로 혼자만의 일을 하는 것이고, 언제든 조정이 가능하기도 하며, 하면 좋고 안해도 그만인 일들이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초에 팀을 옮기면서 이러한 저의 패턴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항상 고정적인 업무 영역만을 하다가 DevOps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모든 것이 신세계였습니다. 항상 새로운 기술들을 접하고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개발환경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것이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투자하는 제 개인 시간을 돌려서 새로운 기술을 쓰는 회사 업무를 하는데 쓰자는 것이였죠.

덕분에 좋은 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회사 프로젝트가 마치 제 개인 pet project처럼 느껴졌기에 애착이 가기도 했으며,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제 업무 성과까지도 덩달아 늘어나니 1석 2조였지요.

하지만 이렇게 변화된 저의 생활 패턴은 단기간에 그쳤어야 했었습니다.
저의 라이프 영역의 개인적으로 투자하는 시간에 업무라는 것이 들어오기 시작하자 일과 삶의 분리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고, 어느새 스프린트 플래닝 시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스코프를 계산할 때, 퇴근 후 일 할 작업량까지 고려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간호 개인 프로젝트들을 하려고 계획을 세운 주간이라고 해도 늘 그렇듯 사고는 예기치않게 터져서 서버 다운 등의 이슈가 생겨 긴급 대응 문제로 제 시간을 투자하거나, 스프린트 진척이 눈에띄게 더딘 것을 참지 못하고 회사 일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점점 늘어나는 일 욕심은 결국 개인 시간의 투자 뿐 아니라 회사 내 근무시간의 증가까지 초래하게 되었죠.

그런데, 이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이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똑같은 장소인 제 집에서, 똑같은 시간인 하루에 2시간 정도, 똑같은 일인 무언가를 개발하고 디버깅하고 공부하는 것인데, 하는 일의 목적이 단순 개인의 취미와 흥미인지, 회사 업무인지에 따라 그 영향력이 다른 것 같네요.

물론 자기계발 시간에 회사업무가 들어오면서부터 일종의 obligation이 생겼기에, 그에따라 투자 시간에대한 자율성은 줄어들고, 완수 후 성과에 대한 압박이 있기에 기본적인 스트레스 레벨이 다를 수 밖에 없긴 하지만요.

이렇게 정리를 하다보니 12월 말에 떠난 이전 매니져가 더 그리워지네요.

그 친구가 회사를 떠나기 전 2-3달동안 저에게 계속 했던 말이 있습니다.

"쉬고 싶으면 아무때나 쉬어라. 휴가 안올려도 좋다."
"일을 너무 많이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에 공부를 좀 해봐라. 그게 장기적으로는 너에게도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
"하고싶은 공부나, 참가하고 싶은 컨퍼런스가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최종 결정이야 재무팀에서 하지만 학비 보조나, 컨퍼런스 참가비 등 문제는 내가 최대한 재무팀과 싸워서 얻어낼 것이다"

그리고 회사를 떠나기 직전에도 곧 제가 휴가를 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런 말도 해줬었죠.

"칸쿤 가면 거긴 진짜 천국같을꺼야. 돌아오자마자 바로 일을하지 말고, 휴가 복귀 후 1달정도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않으려고 노력해봐. 마치 칸쿤에 있을 때 처럼 말이야. 그렇게 한다고해서 네 job security가 위협받을 일은 절대 없을꺼야."

이래저래 저와 공통분모가 많다고 느꼈던 매니져인데, 그래서인지 저의 미래를 미리 내다본 듯한 이야기들이였죠.

다음 주 부터는 이제 회사와 집 간에 아주아주 강력한 firewall을 설치 해 볼까 합니다.
사실 이전 팀에서는 개발환경 자체가 집에서 일을 할  수 없는 환경이라 하고싶어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 팀은 필요시 재택근무도 적극 장려하는 조직이고, 업무 특성상 재택근무를 해도 무방하기에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다보니 물리적인 firewall이 없어진 상황인데,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해도 제 마음의 벽을 하나 세워보고자 합니다.

보다 오랫동안 행복하게 개발자로 살아남기 위해서요.

그런데... 솔직히 완벽 차단을 할 수 있을지는 솔직히 자신 없긴 하네요. 제 버릇 남 못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