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5일 화요일

캐나다에서 야근 & 잔업 - 일체유심조라...

요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 효리네 민박집을 재미있게 즐겨보고 있네요.

화려함의 최고점을 달리던 톱 가수가 한적하고 여유롭기 그지없는 제주도에서의 삶을 사는 모습이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쎈언니의 모습으로 빛나는 예능감을 선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한 모습이 때로는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하더군요.

방송 내용 중 삼남매의 맏언니와 이야기 중 이런 말을 했더군요.


"제주도에서도 마음이 지옥같이 사는 사람도 많다. 서울에서도 얼마나 즐기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 어디에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곳 그 자리에서 만족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

원효대사님의 일체유심조가 생각나는 대목이긴 한데, 사실 요즘 회사일을 하면서도 그런 점을 조금 느끼기는 합니다.


부서를 옮기기 전 저의 생활을 잠시 돌아보자면... 

  05시 기상
  05시 30분 헬스장
  07시 30분 출근
  08시 근무시작
  15-17시 퇴근

이러한 생활의 반복이였습니다.

근무 강도의 압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생활이였고, 사실 당시의 저의 고민 중 하나는 오늘은 어떤 일을 벌여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업무분야는 백엔드쪽에 비해 진척속도가 항상 빠른 편이기에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었으니, 스프린트 스토리 외에 technical debt 없애기 위한 별도의 타스크를 스스로 만들어 해결하거나, 백엔드 쪽 스토리와 타스크들 중 저의 역량으로 할 만한 일들을 집어와 해야했죠.

부서를 옮긴 후 지난 반년 가량 저의 생활은...

  05시 50분 기상
  06시 20-30분 출근
   07시 근무시작
  16-22시 퇴근

이렇습니다. 요즘 아침잠이 많아져 아침에 운동을 거르고 있다보니 출근시간이 1시간 당겨지는 효과가 생겼는데, 퇴근 시간은 이전보다 평군 2~3시간 이상 늘어나, 실질적으로 3~4시간씩은 더 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죠.

아니, 한국에서 야근/특근/잔업이 싫고 힘들어 캐나다까지 건너온 녀석이 이렇게 야근질이라니... 싶겠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에서의 잔업과 캐나다의 잔업이 저에게 가져오는 느낌은 상당히 상이합니다. 

돈 때문일까요?
그것은 일단 아닙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도 잔업비는 없었지만, '교통비'라는 명목으로 잔업수당을 받았습니다. 8시간 근무 후 매 2시간 추가 시 마다 3만원이던가? 교통비를 지급 받았죠. 지금 회사에서는 24시간 근무를 하더라도 어떤 명목으로든 잔업비가 지급되지 않습니다. 매니져 재량에 따라 다음날 하루 쉬게 해 주거나, 다음에 아무 때에나 대체휴일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몇시간 잔업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기 보다는 긴급 사안으로 인해 회사의 요청으로 밤샘을 하거나, 주말에 근무를 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럴까를 생각 해 보았는데, 우습게도 마음에 달린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제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득도한 사람도 아니다보니 제 스스로 모든 것을 컨트롤 하여 원효대사님 처럼 해골물도 시원하게 퍼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역시도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환경의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첫째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강제성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제가 모셨던 상사들과 부서장들 중, 몇몇은 잔업에 강제성을 부여했었습니다. 제가 해야하는 일들의 진척상황과는 무관하게 매 월 몇시간 이상의 잔업을 해야만 했고, 또 특별한 사유 없이는 매 일 몇 시 이전까지는 퇴근을 하면 안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부서들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강제적으로 잔업을 할 때, 바쁜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도 강제적으로 남아있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 제가하는 잔업에는 강제성이 없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남아달라는 요청이나 부탁이나 명령을 한 적이 없으며, 제가 일을하다보니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경우이거나, 제 스스로 오늘 내에 어디까지 일을 마치겠다고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아있는 경우입니다.

두번째로는 정규 근무시간 내 일을 마치지 못한 사유입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을 하시겠지만, 본인의 직급과 직무에 해당하는 R&R과, 그리고 계획된 나의 업무와는 무관한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윗 사람의 개인적인 일을 대신 봐주는 것인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영역입니다. 반쯤 이해가 가는 부분은 부서 막내이거나 신입이기에 담당해야 하는 부서 총무 역할로 인해 단합대회, 회식 등 이벤트를 주관하고 꾸미는 업무가 되겠고, 그래도 거의 이해가 가는 영역으로 보자면 공식적으로 업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임원 및 상사의 업무관련 떠오른 아이디어와 생각을 구체화 시켜주고 관련 백업 데이터를 조사해 주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돌발적으로 생긴 업무들이 공식화되고 저의 루틴한 업무와 함쳐저 우선순위가 조정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린 업무들은 그에따라 due date이 조정이 된다면 그다지 불만이 없겠지만, 보통은 루틴한 업무 위에 이런 업무들은 얹혀지게 되다보니 모든 업무들을 주어진 기간내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잔업을 해야만 하게 되었었죠.
하지만 지금의 잔업은 이런 외부요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거의'라고 한 것은 간혹 저희 부서에서 운영중인 서비스나 서버가 돌발적으로 펑펑 터지는 사고들로 인해 돌발 업무가 발생하기 때문이지, 간혹 위에서 지시나 요청이 내려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번째는 절대적인 잔업 시간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고과 등급의 결과 등 이런저런 사유로 갑자기 충성심과 애사심이 급상승 하고, 의욕의 충만하게 된 경우들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잔업과 주말 특근을 거뜬하게 버텨내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최대정지 마찰계수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잔업과 특근이 반복되다보면 저의 체력과 의욕, 목표의식이 모두 burn out되어 너덜너덜해지고 다시 투덜이 스머프로 바뀌기 마련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행히도 아직까지 burn out 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일단 제 스스로 정하고 행하는 잔업이기에 제가 버틸만한 적정선에서 stop을 합니다. 늦더라도 밤 10시쯤에는 집에 가고, 어쩌다 정말 밤을 새는 일이 있으면 다음날 푹 쉬거나 일찍 집에 갑니다.
매니져 역시도 팀원들의 burn out을 많이 챙겨줍니다. 실제로 1:1 미팅을 할 때 매니져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시스템에 휴가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피곤하거나 집중이 어렵거나 개인적인 일이 있다면 그냥 하루 이틀 회사에 나오지 않거나, 아침에 sync 미팅만 끝나고 바로 집에가도 좋아. 그러다가 다시 회복된 것 같으며 원격근무를 해도 좋고. Burn-out 되지 않는것이 당장의 task를 빨리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해. 휴가는 이럴 때 쓰지말고 아껴뒀다가 가족들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써."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라고 느끼는 것이 바로 주체성과 주인의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것은 부서를 옮긴 이후에 더욱 더 강해졌습니다. 제품팀에 있을 때에도 자칭타칭 '내 새끼' 라고 불리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제가 제안하고 구현한 모듈이나, PM 요청으로 진행 한 것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개발했던 기능이나 모듈, 혹은 프레임웍 등이 그러합니다. DevOps로 옮긴 이후에는 이러한 '내 새끼'들이 더 많아졌으며, 또 그 애착관계의 정도가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 제품은 태어난지 20년이 넘은 제품이다보니 지속적으로 리펙토링 중이지만 아직도 monolithic 서비스의 구조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내새끼 인 모듈이나 기능들이 각각 독립적인 life cycle과 운영이 되는 구조는 아니죠.
그런데 지금 DevOps에서 개발중인, 또 개발했던 툴/서비스들은 micro service 형태로 개발 중입니다. 그렇다보니 현재 운영중인 각각 독립적인 서비스들 중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가 다 담당했던 그냥 내새끼가 아닌 '애지중지 내새끼'가 참 많습니다. 그 만큼 애착도 더 많이가고요. 주어진 스프린트 스토리 requirements와 acceptance criteria를 모두 구현했다 하여도, 정의되지 않은 gray area들을 보다 확실히 하고, 추후 확장성도 고려하는 등 내 새끼를 더 튼튼하고 안정적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더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또, 제가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와 툴의 직접 고객이 회사 내 개발자와 QA들이다 보니 다양한 VoC들이 저에게 직접 접수됩니다. 사실 이러한 VoC들을 따로 뽑아 별도의 티켓을 만들어 다음 스프린트 플래닝에 추가하여 해결을 해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 됩니다.
하지만 간혹 critical한 VoC이거나, 이전 경험을 되돌아 보았을 때, 개선 시 상당한 편리함을 가져올 만한 VoC인 경우 '애지중지 내 새끼'를 보다 빛내주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바로 개선에 들어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소중한 내 새끼이더라도 팀에서 약속한 스프린트는 지켜야 하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주어진 업무는 업무대로 완수하고, 그 외에 내 새끼를 갈고 다듬고 보듬는 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작은 차이 하나를 덧붙이자면 칭찬과 격려, 그리고 감사표시가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작은 노력 하나하나에 대해 매니져와 VP는 잊지않고 감사표시를 합니다. 그리고 VoC를 접수했던 요청자들 역시 개선될 때 마다 감사 인사를 합니다. 사실 말로 때우는 별 것 아니지만 이런 작은 반응들이 큰 힘이 됩니다. 
한국에서는 늘상 있는 잔업이고, 여기서는 특별한 것이기에 감사 인사를 챙기는 것이 아니냐고요?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속한 DevOps에서 잔업은 상당히 일상적입니다. '내 새끼'에 대한 애착과 주인의식이 사실 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팀원들이 가지고 있다보니 퇴근은 일찍 하더라도 늦게까지 집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일을 하는 팀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당장 저희 서비스 중 하나가 1시간 동안 작동을 멈추면 개발팀 전체가 1시간 동안 아무런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각 개인의 내새끼를 위해서 뿐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많은 팀원들이 새벽에도 일어나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듭니다. 때로는 각 micro services 간에 영향이 큰 변경시, 이미 staging 서비스에서 많은 테스트를 했다 하여도 publishing 서비스로 넘어갈 때에는 가능한 업무시간을 벗어난 시간에 작업을 하기에 밤늦게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요.

작년대비 개인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렇다보니 줄어든 운동시간으로 살도 많이 찌고, 집 앞뒷마당 잔디밭이 점점 잡초밭으로 변해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 참 일이 재미있고 보람되어 만족스럽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에도, 당시 회장의 경영철학이 그룹 전반에 제대로 자리가 잡혔다면 잔업에 강제성도 없거나 덜했을 것이고, 업무의 주체성도 이전보다 더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입사원 연수 때 들었던 이른바 이건희 회장의 '뒷다리 론'인데,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뛸 사람은 뛰어라. 걸을 사람은 걸어라. 뛰거나 걸을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냥 쉬어도 좋다. 다만, 뛰거나 걷는 사람 뒷다리만 잡아 당기지 말아라. 그래야 그들 덕에 발전해서 노는 사람도 먹고산다. 걷건 뛰건 놀건 모두 한 방향으로 가자."

이 말 대로라면 열심히 할 사람은 열심히 뛰고 날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그러기 싫은 사람은 안해도 되며, 결국은 결과와 성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기업 문화가 될 터인데, 실상은 그러기 힘들었습니다.

부서장이나 그룹 임원이 걷거나 그냥 놀고 싶은사람이라면 부서원 전체가 그럴 수는 있겠지만, 보통 그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면 뛰고 날아야 하는 사람이고 (그 위의 임원이나 사장단이 뛰거나 날기를 바라고, 또 그 위에 서도 그들에게 똑같은 기대를 하기에...), 자신이 뛰고 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부서원 모두가 자신 이상으로 뛰고 날기를 원했죠. 만약 그럴 의지가 없는 부서장이나 임원이라 해도 1~2년 사이에 그 조직은 사라지기 마련이였고요.

또, 근원적으로 보자면 한국 기업에서 채용은 그룹 채용이나 각 회사별 채용이지 각 부서별 채용이 아니다보니 뛰어야 하는 부서에 뛸 사람이 배치받고, 걸어야 하는 부서에 걷고싶은 사람이 배치받는 것이 아닙니다. 뛰고싶은 사람, 날고싶은 사람, 걷고싶은 사람, 놀고싶은 사람이 모두 섞여 선발이 되며, 또 각 부서 배치 시 섞여서 배치를 받습니다.
그러니 걷고싶은 부서에 배치받은 뛰고싶은 사람은 부서에 만족을 못하고 어느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그 부서장을 찍어내리고 싶어하며, 뛰고싶은 부서에 배치받은 걷고싶은 직원은 그 페이스에 숨을 헐떡이다 지쳐 낙오하게 됩니다. 또, 뛰고 나는 사람이 그에 맞는 성과를 인정받아 조기 승진이나 높은 고과와 그에 따른 연봉 및 인센티브를 받더라도 걷고싶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 포상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놀거나 걷는 동안 뛰어다닌 사람들이 포상을 받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결과야 어떨지 몰라도 지난 과정에서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뛰어 다녔음에도 포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죠.

구직자 입장에서도 한 번에 대단위 인력을 선발하는 그룹 채용이 더 편리한 제도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시간과 비용 소모가 적으며, 일관된 채용 프로세스를 적용하여 동일한 선발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채용 방식이지만, 채용 이후 회사 운영의 측면에서는 각 부서별 채용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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