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선배/후배와의 대화 - 일체유심조2

어젯 밤에 우연치 않게 페이스 북에 보인 글이 있어 댓글을 남기다가 삼성에서 일할 때 알게된 유관부서 선배와 페이스북 챗을 통해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근황도 확인하고 덕담도 주고받던 중에, 오래 전에 그 선배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 그 당시의 이야기를 제가 꺼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갤럭시 노트 2 or 3, 혹은 갤럭시 S3 or 4 프로젝트를 하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제품이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순조롭게 초도 판매가 시작된 이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모여 같이 회식을 하던 날이였죠.

프로젝트 기간 중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계획된 모든 것을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상당부분 진척이 있었고, 또 출시 후 반응도 좋았으며, 약간의 지연은 있었지만 hard deadline 이내에 완료되었기에 모두들 기분 좋은 상태였고, 특히나 HW/SW 개발 담당 수석님들은 다음 임원 인사 때 상무 승진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죠.

어느정도 술자리가 무르익자 몇몇 개발팀 사람들은 수석님들께

"이제 곧 상무님 되시는거 아닌가요? '상무보' 라고 불러야 되는거 아닐까 모르겠는데요"

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기도 했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술자리가 진행되고 저도, 또 그 선배도 상당한 량의 술을 마신 상태에서 갑자기 선배가 저에게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너희부서 사람들 다 좋아. 너 그것도 복이다. 다들 스마트한 것 같고. 업무 분야때문인지 몰라도 젊은 것 같다. 실제 나이도 다른 팀들보다 젊기도 하지만, 생각도 젊고, 무엇보다 부서에 공공의 적이 되는 꼰대가 없자나."

원래 젠틀한 성격에 후배에게 말 놓는 사람이 아닌데, 그 날 따라 술이 취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유관부서라도 직급이 낮으면 말부터 놓고보는 개발팀 수석님이 옆자리에 앉아 반말 바이러스를 옮긴 것인지 호칭도 '대리님'에서 '너'로 바뀌었고, 말도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뀌었습니다.

"생긴지 몇 년 안된 팀이자나요. 업무 R&R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팀이라 일단 존재 자체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다같이 뛰다보니 그럴지도 모르죠."

"뭔소리야. 요즘 시기엔 너희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HW만 가지고 경쟁이 되나? 그리고, 할 일이 명확하지도 않은 팀을 회사에서 몇 년째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아? 삼성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필요하니까 조직이 계속 유지되는거지."

"뭐, 저도 그렇게 믿고싶은데, 매년 임원인사/조직개편 시즌되면 팀이 남느냐 없어지느냐 이야기 돌고, 또 매 년 팀 인원 반토막 나서 다른팀으로 이동되고 그러자나요."

"야 봐봐. 그게 너희 팀 없애려고 이동시킨게 아니자나. 너네가 빌드업 한 프로젝트가 구찌 커지니까 새로 전담 팀 꾸리던지, 더 큰 팀으로 옮기느라 그런거지. 너희가 잘 하니까 그렇게 분할되고 자꾸 그러는거자나."

"그래도 뭐랄까...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좀 저희 역할이 오버헤드 같기도 하고 그렇죠. 진짜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말이죠."

"진짜 쓸데없는 일이거나 오버헤드면 사람 반토막 나고나서 다시 1년 지나면 채워지고 그럴 수 있겠냐? 인사팀이 호구도 아니고."

"솔직히 각 부서의 업무들을 모아놓고 저희 부서의 업무들과 다른 부서의 업무들 중 교집합을 빼고나면 저희 부서에는 남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고유 영역이 없죠."

"고유영역? 야 그런게 어디있어. 개발/생산 같은 직접부서 빼면 원래 그런거 없어. 나라고 있을 것 같아? 상품기획? 따지고보면 우리가 뭐 밑바닥부터 새로 만들어 내는게 어디있어? 다 디자인, 개발, 연구소, 해협에서 들고온 것들 하나로 엮는거지. 그렇게 따지면  우리라고 고유영역이 있냐? 넌 그게 문제야. 너 책임감도 있고, 그래서 같이 일하면 편한하긴 한데, 넌 주인의식이 없어. 가끔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진취적이지 않아."

선배가 이 말을 했던 순간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책임감이 있는데 주인의식은 없다? 명확하게 우리가 주인인 업무가 없는데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안그래도 부서 이동 후 업무 성격도 잘 맞지않아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던 상황인데다, 언젠가부터 갖고 있었던 회사 생활의 원칙, 'x 팔리지 않게 일하자' 를 나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영 거북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이라는 말은 정확히 정곡을 찔렀습니다. 비록 이 말을 했던 선배는 지금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저도 선배와의 대화 내용은 제 기억에 의거해 재구성을 한 것이지만 그 말만은 취중에 들었어도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말 그대로 창피한 일이 터지지 않는 수준에서만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가능한 현재있는 자원들 중에 하나라도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만 관리를 했었고, 새로운 일에는 상당히 보수적으로만 접근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부서 내에서도 업무 영역은 크게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신규 서비스 기획/추진/개발, 다른 하나는 서비스의 유지/보수/관리/배포 였습니다. 원래는 모든 팀원들이 이 두 가지 업무 모두를 중첩해서 일하던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팀 내에서 업무영역을 기획담당, 매니징 담당으로 확실히 나누게 되었는데, 저는 그 때 매니징 업무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팀내에 새로운 프로젝트나 업무가 진행 될 때면 몇 번이고 업무 분할을 다시 했지만 저는 요지부동으로 기존 업무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고요.
매니징 그룹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유는 대외적으로는 저만의 전문영역에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제가 주인이 되는 업무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신을 업무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저 매일매일 루틴한 업무를 해가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 관리/모니터링하고, 만약에 사고가 터지만 관련 직접부서에 추궁을 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 보다는 지금 있는 것들이나 제대로 내보내자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당시 제가 얼마나 수동적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주로 플래그쉽 단말쪽에서 일했고, 다른 제품군의 경우 후배들이 담당을 했었습니다. 하루는 특화폰을 담당한 후배가 기존 서비스를 조금 변경하여 그 모델의 특성에 맞게 바꾸고자 유관부서 요청 공문을 보내기 위해 저를 찾았습니다.

제품 컨셉에 맞는 적절한 제안이였죠. 하지만 당시에 플래그쉽 모델을 타깃으로 메이져 버젼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였기에 저는 본 변경건으로 인해 제 모델의 일정에 영향이 갈 것을 먼저 우려했었고, 후배의 아이디어에 테클부터 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진짜로 우려하는 제 '모델 일정에 영향'을 제외한 다른 risk들을 하나씩 이야기 하고 후배와 제 우려들과 후배의 제안이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하나씩 따지다가 후배가 저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대리님이 그걸 걱정해요? 그건 그 쪽 담당부서에서 고민하고 답변을 줘야하는 것이지 대리님이 왜 그걸 먼저 대신 걱정해주고, 그 걱정 때문에 먼저 우리의 요구사항을 스스로 제한하나요?"

갑자기 대낮에 벌거벗은 채로 강남대로에 서 있는 것 마냥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아... 아니 그런건 아니고, 객관적으로 추진 가능한지 가능성을 미리 알아야 우리도 우리 컨택 포인트들에 이야기 할 때 톤을 정할 수 있으니까 그런거지..."

"거기서 힘들겠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안할 것도 아니자나요. 어짜피 우리는 어떻게든 요청하고 안되면 이슈 레이즈하고, 보고하고 해서 일이 되도록 할꺼자나요. 그게 우리 할 일 아니에요?"

이번에는 원투 펀치를 맞은 것 처럼 어지러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의 할 일과 이 후배가 생각하는 우리의 할 일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후배의 말이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고요.

이후로 저는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로기 상태에서 더 이상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이상한 말들을 내밷었습니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발생한 자기방어기제였는지, 무었이였는지는 몰라도 제가 이렇게 핑계를 대는 와중에도 스스로 이 말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부끄러웠습니다.

"그건 그런데... 이게 이 모델에 나가면 플래그쉽 모델 서비스가 이 모델보다 오히려 비교 열세가 되고, 주절주절주절... 그러면 플래그쉽 모델 서비스 기획도 갑자기 변경될꺼고, 주절주절주절... 또 그러면 이 모델 타깃 특화가 더 이상 아닌게 되고, 주절주절주절....."

결국 후배는 마지막으로 저에게 KO 펀치를 날렸습니다.

"그러면, 대리님이 안하신다면 저 혼자라도 공문 보내고 회의 소집할께요."

저는 넉다운이 되어 버린 숨긴채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같이 추진해 보자는 말을 남기고 휴게실로 갔습니다. 휴게실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 잔을 뽑아 놓고 후배와 주고받은 말들을 되새기기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후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괘씸한 것 같았고, '어디 해 봐라. 그게 되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음료수 한 캔을 다 마실 때 즈음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한 없이 부끄럽기 시작 했습니다. 저도 몰랐던 저의 속 마음을 후배의 말을 통해 제가 알게된 것 같았습니다.

'난 기획 담당자가 아니야. 그냥 기획되서 개발중인 것 들 잘 가져다 쓰면 되.'
'더 좋아지건 말건 난 모르겠고, 그냥 딱 계획된 것만 문제없이 탑재될 수 있게 하자.'
'지금도 바쁜데 일 더 벌려봐야 좋을 것 없어.'

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는데, 저는 제 마음도 모른채 후배의 제안에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던 것이였습니다.

그 때 시간이 밤 10-11시 즈음이였는데, 이미 시간도 많이 늦었고, 더 이상 일을 할 만한 상태도 아니였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캔맥주라도 하나 사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퇴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 상황에서 후배의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어 후배의 퇴근버스 막차 시간에 맞춰 30여분 가량을 휴게실에 더 머물러 있다가 사무실로 돌아 갔습니다.


만약에... 만약에 제가 그 때에 조금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일을 했다면, 적어도 선배나 후배에게 그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라도 제 마음을 다잡고 일했다면 어땠을까요?

워낙 SW 개발 일을 좋아하고 즐기기에 여전히 마음 속에 무언가 2% 부족함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또 어쩌면 지금 제가 저의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기듯이 그 때에도 제 업무와 새로운 도전들을 즐기면서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일이 너무 좋고, 도전과 그에 따른 성취감에 빠져 아직도 한국에서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제가 적극적으로 저의 업무를 대했다면 그 시절의 기억들은 지금보다는 더 좋은 추억들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부끄러움을 안겼었던 선배와 후배, 두 분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는 선후배나 동기들과 연락할 때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해 듣습니다. 두 분은 저에게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그게 우리 할 일 아니에요?' 를 말 해주었을 때의 마음가짐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듯, 이미 조기 승진도 하셨고 지금도 회사생활을 아주 잘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은 인생의 스승이라고 하는데, 이 두 분은 적어도 다른 인연들 보다는 저에게 더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준 스승들입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약 5년간의 시간은 한 때라고 말하기에는 커리어 빌드업의 기반을 다지는 너무나 중요한 시기인데,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마음의 벽을 닫아 그 시기를 스스로 인생의 암흑기로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동시에 그 때의 고통과 시련이 지금 저를 캐나다로 인도했고, 캐나다에서 삶과 일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고마운 경험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삶에 있어서 모든 경험은 그 영향이 크건 작건 삶의 자산이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연하게 선배와 챗을한 덕분에 제 기억 깊은 곳에 있던 부끄러움 두 가지를 다시 꺼내오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 부끄러움을 말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이러한 부끄러움이 없게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2017년 9월 12일 화요일

동물의 왕국

요즘 점점 제가사는 동네가 동물의 왕국이 되어가는게 아닌가 싶네요.

처음 이 동네로 이사를 온 이후에 다양한 동물들을 집앞에서 만날 수 있던 것이 좋았습니다. 다람쥐나 너구리 정도야 토론토 아파트에서도 자주 보던 동물이긴 했지만, 집 앞뒷마당에서 토끼, 매와 같은 동물을 볼 수 있어서 뭐랄까... 좀 더 건강한 곳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런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작년 봄에 아기토기 5마리가 저희 집 뒷마당에 찾아왔을 때에는 아이들 뿐만 아니라 저 역시도 귀염둥이 손님이 찾아왔다며 너무나 반가웠죠.

집 뒷마당에 찾아온 아기토끼 가족

하지만 그 해 여름이 되자 귀염둥이 손님들은 불청객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름이 끝나가던 9월 즈음부터 아침마다 뒷마당에 나가보면 어마어마한 양의 토끼똥이 뒷마당 잔디밭을 뒤덮고 있었으며, 500원 짜리 동전보다 조금 큰 크기로 군데군데 잔디가 뿌리채 뽑혀 죽어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왜 잔디가 뒤집혔는지 알 수 없었는데, 뒷마당 불을 켜둔 어느 저녁날 토끼들의 범행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 번은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집에 오는 토끼들이 봄에 찾아왔던 아기토끼들 같아 왠지 정이 가기도 했고, 한두군데 잔디가 죽은 것은 다시 잔디 씨를 뿌리고 흙을 맺구면 된다고 생각 했으니까요.

하지만 밤새 비가 내렸던 어느 날 아침, 뒷마당에 나가보니 수십 군데에 어른 손바닥 만한 크기로 잔디들이 뿌리채 뽑혀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잔디밭에 물기가 마르지 않았던 다음날 아침, 뒷마당은 더욱 더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죠. 더욱 더 안좋은 것은 9월은 이미 잔디를 심기에 시기상 늦어, 잔디가 뽑힌 곳은 맨땅이 드러난 상태로 방치가 되었는데, 가을이 끝나갈 무렵이 되니 그 자리들에는 수많은 잡초들이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죠.

올해 봄이 찾아왔을 때, 잔디가 죽은 곳을 모두 파내고 새 잔디씨를 정성껏 심고 새 흙으로 덥어주어 정성껏 키웠습니다. 여름이 찾아올 때 즈음이 되자 잔디 씨를 심은 곳에서 다시 어린 잔디 싹이 자라나면서 앞뒷마당이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죠.

하지만 깔끔한 마당을 꾸렸다는 뿌듯함도 잠시... 어느날 부터 다시 뒷마당에 다시 토끼 똥들이 보이기 시작하기에 뒷마당 펜스 및을 여러가지 방법으로 막아 보았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곳 저곳 틈새를 비집고 들어오는 토끼들로 인해 결국 뒷마당은 참혹한 모습으로 다시 변했으며, 저는 결국 잔디를 포기하고 토끼들에게 항복을 했죠.

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동네에 너구리가 보이지 않아 쓰레기를 버리는 날 쓰레기 통이 뒤집 힐 걱정을 안해도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잔디 씨앗과 흙, 비료 등에 수백불을 쏟아부어 몇달동안 정성껏 가꾸었던 잔디들이 토끼에게 이렇게 무참히 희생되고나니, 너구리 같은 잡식/육식 동물이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며 가끔 산책을 하다 나무위에 앉아있는 매를 만나면 

"야! 넌 배도 안고프냐? 토끼 안잡아가고 뭐하냐?"


라고 하소연을 하기도 했죠.

그러다 뒷마당이 완전히 잡초 반 잔디 반이 되어버린 올해 8월 부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 했습니다. 이미 잔디를 포기한지 한달이 넘은 상태인지라 그간 유심히 보지 않았는데, 어느날 보니 뒷마당에 토끼 똥들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죠.
어떤 이유에서 토끼들이 오지 않는 것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텃밭에 딸기와 상추, 그리고 깻잎들의 신변이 확보되었다는 안도감이 함께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끼들이 왜 갑자기 사라지게 된 것인지 눈치를 챘습니다. 바로 여우나 스컹크 같은 육식 동물들의 등장이였죠.


고양이를 노리고있는 여우

귀엽게 생겼고 사람을 직접 공격하진 않지만 스컹크 방귀는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어느 날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이상한 것이 땅에 떨어져 있어 살펴보니 토끼 뒷다리 하나만 덩그라니 있었습니다. 여우일지 스컹크일지는 몰라도 어떤 동물이 다 잡아먹고 뒷다리 하나만 남겨둔 것 같더라고요.

가끔 이렇게 끔찍한 모습을 보기는 해도, 그래도 육식동물들의 등장이 조금은 반가웠습니다. 스컹크는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늑대나 곰처럼 사람에게 큰 해가 되지는 않고, 또 마당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대는 토끼들을 쫒아 줬으니까요.

하지만 어제부로 생각이 다시 바뀌었습니다. 육식이건 초식이건 모두 사람에게 원래 살던 터전을 빼앗긴 불쌍한 녀석들인건 같지만, 육식동물들이 많아진 것이 나쁜 측면도 있더라고요.

어젯 밤 늦은시간에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흡사 사람의 비명소리같은 이상한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니 여우가 짖는 소리더군요.
신기해서 아래 영상을 촬영을 하다보니 사람이 지나 갈 때 마다 여우의 위치는 바뀌어도 항상 한 곳을 보고 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을 자세히 보니 이웃집 고양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더라고요.
늦은 밤이라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다소 큰 덩치에 검은색 털과 간간히 보이는 흰색 털로 보아 이웃집 고양이 벨라인 것 같았고, 그리고 이 녀석이 덜덜떨며 웅크리고 있는 나무가 바로 벨라네 집 앞 나무이니 어느정도 확신이 생겼죠.

이미 시간은 자정인데다 제가 고양이 곁을 떠나면 언제라도 바로 달려들 것 같았고, 벨라 이 녀석은 마치 고양이 앞의 생쥐마냥 그대로 얼어붙어 고개조차 돌리지 못하는 상태라 도망도 못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와이프에게 전화해서 이웃집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죠. 그렇게 수분이 지나자 연락을 받은 이웃이 집 문을 열고 나왔고, 벨라는 집 문이 열리자 마자 순식간에 집으로 도망 갔습니다.

여우 같은 작은 육식동물들이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혜는 주지 못하겠지만, 이처럼 가정에서 키우는 반려 동물들에게는 큰 위협이 될 수 있어서 이래저래 반갑지만은 않네요.

특히나 집에서 멀리 나가지 않는 고양이들의 경우 벨라처럼 자유롭게 집으로 드나들 수 있게 해서 자유롭게 외출을 하는데, 이제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반려동물들의 자유가 조금은 박탈당하게 될 것 같네요. 적어도 여우들이 안보일 때 까지는요.

2017년 9월 5일 화요일

캐나다에서 야근 & 잔업 - 일체유심조라...

요즘 한국 예능 프로그램인 효리네 민박집을 재미있게 즐겨보고 있네요.

화려함의 최고점을 달리던 톱 가수가 한적하고 여유롭기 그지없는 제주도에서의 삶을 사는 모습이 이색적이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않을 당당함과 자신감으로, 쎈언니의 모습으로 빛나는 예능감을 선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으로 변한 모습이 때로는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하더군요.

방송 내용 중 삼남매의 맏언니와 이야기 중 이런 말을 했더군요.


"제주도에서도 마음이 지옥같이 사는 사람도 많다. 서울에서도 얼마나 즐기며 사는 사람이 많지 않느냐. 어디에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있는 곳 그 자리에서 만족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하다"

원효대사님의 일체유심조가 생각나는 대목이긴 한데, 사실 요즘 회사일을 하면서도 그런 점을 조금 느끼기는 합니다.


부서를 옮기기 전 저의 생활을 잠시 돌아보자면... 

  05시 기상
  05시 30분 헬스장
  07시 30분 출근
  08시 근무시작
  15-17시 퇴근

이러한 생활의 반복이였습니다.

근무 강도의 압박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런 생활이였고, 사실 당시의 저의 고민 중 하나는 오늘은 어떤 일을 벌여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였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업무분야는 백엔드쪽에 비해 진척속도가 항상 빠른 편이기에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었으니, 스프린트 스토리 외에 technical debt 없애기 위한 별도의 타스크를 스스로 만들어 해결하거나, 백엔드 쪽 스토리와 타스크들 중 저의 역량으로 할 만한 일들을 집어와 해야했죠.

부서를 옮긴 후 지난 반년 가량 저의 생활은...

  05시 50분 기상
  06시 20-30분 출근
   07시 근무시작
  16-22시 퇴근

이렇습니다. 요즘 아침잠이 많아져 아침에 운동을 거르고 있다보니 출근시간이 1시간 당겨지는 효과가 생겼는데, 퇴근 시간은 이전보다 평군 2~3시간 이상 늘어나, 실질적으로 3~4시간씩은 더 근무를 하고 있는 셈이죠.

아니, 한국에서 야근/특근/잔업이 싫고 힘들어 캐나다까지 건너온 녀석이 이렇게 야근질이라니... 싶겠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에서의 잔업과 캐나다의 잔업이 저에게 가져오는 느낌은 상당히 상이합니다. 

돈 때문일까요?
그것은 일단 아닙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에도 잔업비는 없었지만, '교통비'라는 명목으로 잔업수당을 받았습니다. 8시간 근무 후 매 2시간 추가 시 마다 3만원이던가? 교통비를 지급 받았죠. 지금 회사에서는 24시간 근무를 하더라도 어떤 명목으로든 잔업비가 지급되지 않습니다. 매니져 재량에 따라 다음날 하루 쉬게 해 주거나, 다음에 아무 때에나 대체휴일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만, 몇시간 잔업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기 보다는 긴급 사안으로 인해 회사의 요청으로 밤샘을 하거나, 주말에 근무를 한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제가 왜 이럴까를 생각 해 보았는데, 우습게도 마음에 달린 것 같더군요.
하지만 제가 성인군자도 아니고, 득도한 사람도 아니다보니 제 스스로 모든 것을 컨트롤 하여 원효대사님 처럼 해골물도 시원하게 퍼마실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역시도 환경에 영향을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어떤 환경의 차이가 이런 차이를 만들었을까요?

첫째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강제성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제가 모셨던 상사들과 부서장들 중, 몇몇은 잔업에 강제성을 부여했었습니다. 제가 해야하는 일들의 진척상황과는 무관하게 매 월 몇시간 이상의 잔업을 해야만 했고, 또 특별한 사유 없이는 매 일 몇 시 이전까지는 퇴근을 하면 안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하는 부서들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강제적으로 잔업을 할 때, 바쁜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도 강제적으로 남아있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었죠.
하지만 지금 제가하는 잔업에는 강제성이 없습니다. 누구도 저에게 남아달라는 요청이나 부탁이나 명령을 한 적이 없으며, 제가 일을하다보니 시간이 자연스럽게 흘러간 경우이거나, 제 스스로 오늘 내에 어디까지 일을 마치겠다고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남아있는 경우입니다.

두번째로는 정규 근무시간 내 일을 마치지 못한 사유입니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을 하시겠지만, 본인의 직급과 직무에 해당하는 R&R과, 그리고 계획된 나의 업무와는 무관한 일들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상당합니다. 
최악의 경우는 윗 사람의 개인적인 일을 대신 봐주는 것인데,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 영역입니다. 반쯤 이해가 가는 부분은 부서 막내이거나 신입이기에 담당해야 하는 부서 총무 역할로 인해 단합대회, 회식 등 이벤트를 주관하고 꾸미는 업무가 되겠고, 그래도 거의 이해가 가는 영역으로 보자면 공식적으로 업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임원 및 상사의 업무관련 떠오른 아이디어와 생각을 구체화 시켜주고 관련 백업 데이터를 조사해 주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돌발적으로 생긴 업무들이 공식화되고 저의 루틴한 업무와 함쳐저 우선순위가 조정되고, 우선순위에서 밀린 업무들은 그에따라 due date이 조정이 된다면 그다지 불만이 없겠지만, 보통은 루틴한 업무 위에 이런 업무들은 얹혀지게 되다보니 모든 업무들을 주어진 기간내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잔업을 해야만 하게 되었었죠.
하지만 지금의 잔업은 이런 외부요인들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거의'라고 한 것은 간혹 저희 부서에서 운영중인 서비스나 서버가 돌발적으로 펑펑 터지는 사고들로 인해 돌발 업무가 발생하기 때문이지, 간혹 위에서 지시나 요청이 내려오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번째는 절대적인 잔업 시간의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도 고과 등급의 결과 등 이런저런 사유로 갑자기 충성심과 애사심이 급상승 하고, 의욕의 충만하게 된 경우들이 있긴 합니다. 그리고 당분간은 잔업과 주말 특근을 거뜬하게 버텨내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것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최대정지 마찰계수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잔업과 특근이 반복되다보면 저의 체력과 의욕, 목표의식이 모두 burn out되어 너덜너덜해지고 다시 투덜이 스머프로 바뀌기 마련이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다행히도 아직까지 burn out 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일단 제 스스로 정하고 행하는 잔업이기에 제가 버틸만한 적정선에서 stop을 합니다. 늦더라도 밤 10시쯤에는 집에 가고, 어쩌다 정말 밤을 새는 일이 있으면 다음날 푹 쉬거나 일찍 집에 갑니다.
매니져 역시도 팀원들의 burn out을 많이 챙겨줍니다. 실제로 1:1 미팅을 할 때 매니져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시스템에 휴가 따위는 신경쓰지 말고, 피곤하거나 집중이 어렵거나 개인적인 일이 있다면 그냥 하루 이틀 회사에 나오지 않거나, 아침에 sync 미팅만 끝나고 바로 집에가도 좋아. 그러다가 다시 회복된 것 같으며 원격근무를 해도 좋고. Burn-out 되지 않는것이 당장의 task를 빨리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해. 휴가는 이럴 때 쓰지말고 아껴뒀다가 가족들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써." 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 중 하나라고 느끼는 것이 바로 주체성과 주인의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것은 부서를 옮긴 이후에 더욱 더 강해졌습니다. 제품팀에 있을 때에도 자칭타칭 '내 새끼' 라고 불리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제가 제안하고 구현한 모듈이나, PM 요청으로 진행 한 것이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개발했던 기능이나 모듈, 혹은 프레임웍 등이 그러합니다. DevOps로 옮긴 이후에는 이러한 '내 새끼'들이 더 많아졌으며, 또 그 애착관계의 정도가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저희 회사 제품은 태어난지 20년이 넘은 제품이다보니 지속적으로 리펙토링 중이지만 아직도 monolithic 서비스의 구조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내새끼 인 모듈이나 기능들이 각각 독립적인 life cycle과 운영이 되는 구조는 아니죠.
그런데 지금 DevOps에서 개발중인, 또 개발했던 툴/서비스들은 micro service 형태로 개발 중입니다. 그렇다보니 현재 운영중인 각각 독립적인 서비스들 중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가 다 담당했던 그냥 내새끼가 아닌 '애지중지 내새끼'가 참 많습니다. 그 만큼 애착도 더 많이가고요. 주어진 스프린트 스토리 requirements와 acceptance criteria를 모두 구현했다 하여도, 정의되지 않은 gray area들을 보다 확실히 하고, 추후 확장성도 고려하는 등 내 새끼를 더 튼튼하고 안정적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더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또, 제가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와 툴의 직접 고객이 회사 내 개발자와 QA들이다 보니 다양한 VoC들이 저에게 직접 접수됩니다. 사실 이러한 VoC들을 따로 뽑아 별도의 티켓을 만들어 다음 스프린트 플래닝에 추가하여 해결을 해도 됩니다. 아니 그래야 됩니다.
하지만 간혹 critical한 VoC이거나, 이전 경험을 되돌아 보았을 때, 개선 시 상당한 편리함을 가져올 만한 VoC인 경우 '애지중지 내 새끼'를 보다 빛내주기 위해 그 자리에서 바로 개선에 들어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소중한 내 새끼이더라도 팀에서 약속한 스프린트는 지켜야 하기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주어진 업무는 업무대로 완수하고, 그 외에 내 새끼를 갈고 다듬고 보듬는 작업을 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작은 차이 하나를 덧붙이자면 칭찬과 격려, 그리고 감사표시가 아닐까 합니다.
이러한 작은 노력 하나하나에 대해 매니져와 VP는 잊지않고 감사표시를 합니다. 그리고 VoC를 접수했던 요청자들 역시 개선될 때 마다 감사 인사를 합니다. 사실 말로 때우는 별 것 아니지만 이런 작은 반응들이 큰 힘이 됩니다. 
한국에서는 늘상 있는 잔업이고, 여기서는 특별한 것이기에 감사 인사를 챙기는 것이 아니냐고요?
저도 예전에는 그렇게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속한 DevOps에서 잔업은 상당히 일상적입니다. '내 새끼'에 대한 애착과 주인의식이 사실 저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팀원들이 가지고 있다보니 퇴근은 일찍 하더라도 늦게까지 집에서 원격 근무를 하며 일을 하는 팀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당장 저희 서비스 중 하나가 1시간 동안 작동을 멈추면 개발팀 전체가 1시간 동안 아무런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보니 각 개인의 내새끼를 위해서 뿐 아니라 돌발적인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많은 팀원들이 새벽에도 일어나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듭니다. 때로는 각 micro services 간에 영향이 큰 변경시, 이미 staging 서비스에서 많은 테스트를 했다 하여도 publishing 서비스로 넘어갈 때에는 가능한 업무시간을 벗어난 시간에 작업을 하기에 밤늦게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고요.

작년대비 개인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렇다보니 줄어든 운동시간으로 살도 많이 찌고, 집 앞뒷마당 잔디밭이 점점 잡초밭으로 변해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즘 참 일이 재미있고 보람되어 만족스럽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을 때에도, 당시 회장의 경영철학이 그룹 전반에 제대로 자리가 잡혔다면 잔업에 강제성도 없거나 덜했을 것이고, 업무의 주체성도 이전보다 더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입사원 연수 때 들었던 이른바 이건희 회장의 '뒷다리 론'인데,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습니다.

"뛸 사람은 뛰어라. 걸을 사람은 걸어라. 뛰거나 걸을 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냥 쉬어도 좋다. 다만, 뛰거나 걷는 사람 뒷다리만 잡아 당기지 말아라. 그래야 그들 덕에 발전해서 노는 사람도 먹고산다. 걷건 뛰건 놀건 모두 한 방향으로 가자."

이 말 대로라면 열심히 할 사람은 열심히 뛰고 날며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그러기 싫은 사람은 안해도 되며, 결국은 결과와 성과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기업 문화가 될 터인데, 실상은 그러기 힘들었습니다.

부서장이나 그룹 임원이 걷거나 그냥 놀고 싶은사람이라면 부서원 전체가 그럴 수는 있겠지만, 보통 그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이라면 뛰고 날아야 하는 사람이고 (그 위의 임원이나 사장단이 뛰거나 날기를 바라고, 또 그 위에 서도 그들에게 똑같은 기대를 하기에...), 자신이 뛰고 나는 것을 지속하기 위해 부서원 모두가 자신 이상으로 뛰고 날기를 원했죠. 만약 그럴 의지가 없는 부서장이나 임원이라 해도 1~2년 사이에 그 조직은 사라지기 마련이였고요.

또, 근원적으로 보자면 한국 기업에서 채용은 그룹 채용이나 각 회사별 채용이지 각 부서별 채용이 아니다보니 뛰어야 하는 부서에 뛸 사람이 배치받고, 걸어야 하는 부서에 걷고싶은 사람이 배치받는 것이 아닙니다. 뛰고싶은 사람, 날고싶은 사람, 걷고싶은 사람, 놀고싶은 사람이 모두 섞여 선발이 되며, 또 각 부서 배치 시 섞여서 배치를 받습니다.
그러니 걷고싶은 부서에 배치받은 뛰고싶은 사람은 부서에 만족을 못하고 어느정도 위치에 올라가면 그 부서장을 찍어내리고 싶어하며, 뛰고싶은 부서에 배치받은 걷고싶은 직원은 그 페이스에 숨을 헐떡이다 지쳐 낙오하게 됩니다. 또, 뛰고 나는 사람이 그에 맞는 성과를 인정받아 조기 승진이나 높은 고과와 그에 따른 연봉 및 인센티브를 받더라도 걷고싶은 사람의 입장에서 그 포상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놀거나 걷는 동안 뛰어다닌 사람들이 포상을 받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결과야 어떨지 몰라도 지난 과정에서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뛰어 다녔음에도 포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죠.

구직자 입장에서도 한 번에 대단위 인력을 선발하는 그룹 채용이 더 편리한 제도이고, 회사 입장에서도 시간과 비용 소모가 적으며, 일관된 채용 프로세스를 적용하여 동일한 선발기준을 유지할 수 있는 채용 방식이지만, 채용 이후 회사 운영의 측면에서는 각 부서별 채용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