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9일 금요일

헤어짐에 익숙해지기

타이틀을 적어두고보니 마치 연인과의 이별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회사생활 이야기입니다.

회사를 다니다보면 동기나 선후배, 혹은 직속 상관이 회사를 떠나는 일들을 맞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너무나도 완벽한 직장이라 turn over rate이 아무리 낮은 회사라고 해도 결국에 은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적성에 도무지 맞지않아 떠나는 사람이 있으니 결국 한 번 이상은 이러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죠.

한국에서 직장을 다녔던 8년여간 저는 가깝게 지냈던 동료들과의 이별의 순간을 그다지 많이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저와는 거리가 아주 먼 전무, 부사장, 사장 급 임원이 회사를 떠나는 순간은 거의 매 해 임원인사 시즌마다 경험했지만, 저의 직속 상관이나 저의 직속 후배들, 혹은 저와 같은 팀에서 일을하는 팀원들이 떠나는 경우는 지금까지 딱 2번이 있었던 것 같네요.

제가 신입사원 때 부터 저희 소파트를 이끌던 책임님이 과도한 업무부담으로 회사를 떠난 적이 있었고, 서비스 기획자로 변신한 직후 저희 소파트를 이끌던 과장님이 다른 회사의 독일 법인장으로 스카웃되어 떠나면서 이렇게 단 2번의 이별을 경험 했었습니다.

그런데 캐나다에 와서 일을하면서보니 이러한 이별에 좀 더 익숙해져야 한다고 느껴집니다.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지는 고작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회사 내 경력으로는 중고참 급에 해당합니다. 그 만큼 캐나다의 직장문화는 한국에 비해 turn over rate이 훨씬 높더군요. (적어도 개발자라는 직업군에 한해서는...)

오늘도 저는 회사에서 가장 신뢰하고있는 사람 중 한명을 떠나 보냈습니다.

바로 저희 팀 매니져인데, 이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게 된 계기 중 일부에 대해 저의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더 각별히 응원 해 주고 싶으면서, 동시에 더 안타깝습니다.

제가 다른 팀에 속했을 때 이 친구에대한 저의 인상은 매니져가 아닌 Senior Developer였습니다. 사실 제가 현재의 팀으로 옮기기 직전까지만 해도 이 친구가 개발자라고 생각했었죠. 이렇게 착각을 하게 된 이유는 업무상 이 친구의 소속팀과 협업을 할 일이 있었는데, 누가봐도 사통팔달 시원시원하게 기술적 해답과 의견을 제시했고, 또 이 친구의 이름으로 된 커밋을 간간히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사실 제가 이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Developer에서 Manager로 전직을 한 것인데, 개발 일에대한 애착과 열정이 넘치다보니 Manager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따로 공부하고 연구하며 새로운 기술들을 익히고 살아온 친구입니다.

이렇게 development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자기 자신에대한 무한한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워낙 좋아하는 일이고 누구보다도 잘 하고 싶어하는 일이다보니 객관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seniority를 보기 보다는 주관적인 입장에서 자기보다 항상 높은 곳만을 바라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책망하는 것이지요.

제 주변에도 몇몇 이런 사람이 있는데, 정말 제 기준에서는 "천재 아니야?" 싶은 분들도 같이 이야기 해보면 단순 겸손한 것이 아니라 진짜로 자기 스스로를 slow learner라고 하거나, 창의력이 부족하다고 하거나, 기술의 스펙트럼이 너무 좁다고 하거나, 지금은 몰라도 미래에 먹고살기 힘들다며 자책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이 친구와 1년 가까이 같이 일을 하면서 1:1 면담이나 개인적 사담을 통해 제가 왜 캐나다에 왔고, 어떻게 왔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한 적이 있고, 그런만큼 다른 모든 조건을 떠나서 내가 개발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고맙고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저의 이런 이야기가 이 친구에게 작지않은 자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최근 기술 트랜드와 여러가지 관심있는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그러다 만약 business opportunity를 찾으면 직접 창업을 할 수도 있고, 결국 경제적 압박이 심해지면 지금 회사로 돌아오거나 다른 회사의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다면서 말이죠.

지금까지 만났던 매니져 중에 가장 개발자를 잘 이해하고, 가장 잘 배려하면서, 개발 일손이 부족하면 직접 일선에 뛰어들 수 있는 최고의 매니져였는데, 너무 아쉽네요.

언젠가 또 다른 인연으로 다시 만나길 바라며 그 친구도 저도 Happy New Year가 되길 바랍니다.

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영어의 벽과 이메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영어와 이메일 작성에 대한 저의 이야기를 적어볼까 합니다.



한국 회사에서라도 해외 법인이나 고객, 혹은 외국인 동료와 같이 일을 해보신 분들은 아마 잘 아실 것입니다. 한국인과 함께 일을 할 때에는 이메일이나 메신져로 업무를 하는 것 보다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거나 전화를 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고 편리하지만, 영어로 일을해야하는 상황에서는 조금 달라집니다.

영어실력에 따라 개인차가 있을 수 있지만, 저도 그렇고 제 주변에 다른 분들도 대부분 가장 두려운 것은 전화통화이며, 그 중에서도 단연 백미는 흔히 다양한 목소리들이 겹치는 상황도 발생하는 Conference Call입니다. 그 다음 기피대상은 메신져를 통한 업무이며, 그 다음으로는 화상통화, 직접 대화, 이메일의 순서입니다. 

전 저 같은 경우 영어를 잘 하지도 못하고, 체계적으로 공부를 한 적도 없다보니 상대방과 영어로 대화를 할 때에는 적어도 20% 정도는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니 '말' 이라는 소리 컨텐츠만 순수하게 해석하여 대화를 한다면 최소 20% 정도의 내용은 놓치게 되고, 제가 놓친 컨텐츠가 흐름상 매우 중요한 뜻일 경우 이후 오가는 대화 내용 전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똑같은 대화라 하여도 직접 만나서 하게되는 경우, 상대의 표정이나 제스쳐, 그리고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장소에서 느끼는 직감이라고 할까요? 제 5의 감각 등에 의해 제가 놓친 소리가 있다 하여도 대략적으로 그 대화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나갈 수 있죠. 이는 일상 대화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지만 대화의 내용과 주제가 한정적인 비지니스 대화에서는 거의 대부분 적용됩니다.

화상통화를 하는 경우에는 이 제 5의 감각이 제한받게 됩니다. 또한 '말' 이라는 컨텐츠의 전달 채널인 소리가 실제 대면을 할 때 만큼 깔끔하게 전달되지 않으며, 표정/제스쳐가 전달되는 채널인 '화면'은 제한된 프레임을 통해서만 제공되기에 실제로 만났을 때 만큼 생생하게 그 것을 캐치해 내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전화가 되면, 오직 청각세포에만 의존하여 모든 컨텐츠들을 캐치 해 내어야만 하게 되기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실제로 저 정도의 영어실력에서는 20%를 놓치면 전체 대화에서 맥을 완전히 잘못 짚어내기도 하고, 이해를 못하기도 하다보니 전화통화를 할 경우 온 우주의 기운을 제 달팽이 관에 집중해야 하지요. 그나마 비지니스 대화의 경우 사전에 Agenda가 조율 된 상태에서 전화 연결이 되어 일부 놓치는 것이 있더라도 대화 주제와 내용이 한정되어 있기에 빨라 따라잡을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직장 동료가 갑자기 전화해서 무언가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메신져의 경우에는 전화통화와 같이 실시간성이 있지만 약간의 지연이 있는 실시간 대화이기에 조금은 부담이 덜합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재빨리 온라인 사전을 통해 확인을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역시나 빠른 응답이 필요한데다, 글을 써야 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습니다. 조금은 어눌하거나 틀린 발음일 수 있지만 말로는 할 수 있는데, 이것을 글로 옮겨 적으려면 철자를 모르는 단어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이메일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지만 가장 부담은 덜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가 가장 많은 채널이다보니 천천히 글을 작성하고 두번 세번 다시 검토하고 내용을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항상 언어의 벽을 느끼고 살다보니 영어에 대한 부담이 늘 뒤따릅니다.
지금은 제가 팀을 옮겼지만, 이전 팀에서 매니져가 저에게 항상 영어공부를 좀 하라는 말을 하며 자신이 캐나다에 처음 이민왔을 때 어떤 방식으로 영어 공부했는지를 알려주며 이것저것 추천을 하기도 했습니다. 업무 관련해서는 이전 매니져와 별다른 트러블이 없었지만, 1:1 개인 면담을 할 때 마다 항상 영어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를 해서 이에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올해 초에  DevOps로 팀을 옮기면서도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영어였습니다. 팀 특성상 다른 개발팀들과 소통이 빈번할 수 밖에 없고, 또한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DevOps로 옮긴 이후에 종종 듣는 이야기는 제가 커뮤니케이션을 아주 잘한다는 말입니다. 팀을 옮기면서 따로 영어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영어 실력이 갑자기 일취월장 한 것도 아닌데, 영어공부가 필요하다는 평가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평가로 바뀐 이유는 바로 소통 채녈의 변화가 큰 요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발팀의 일원으로 일을 할 때에는 사실 사전 조율된 미팅이나, 이메일을 통한 공문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극히 드물었습니다. 주로 전화나 메신져, 혹은 그 자리에서 바로 대면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됩니다. 그렇다보니 대화의 내용이나 주제를 제가 미리 예측할 수 없고 그런만큼 듣기에 집중을 해야하며 말할 때에도 더 많은 생각을 거치게 됩니다.

하지만 DevOps에서는 공식적으로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일이 더 빈번하지만, 이메일을 통한 공지, 혹은 외부 요구사항/요청사항에 대한 대응이 그 주를 이루다보니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에 제가 혼자만의 시간을 상대적으로 충분히 가질 수 있었고, 그런만큼 메일을 작성하거나 요청 메일에 응대를 할 때, 어떤 이야기를 할지 충분히 생각하여 작성을 하고, 작성 후에도 다시 한 번 읽어보며 수정 할 시간이 있으며, 문법의 벽에 걸려 생각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낄 시에는 스크린 캡쳐나 코드 캡쳐 혹은 flow chart 등 Visual Aids를 작성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필력과 영어실력, 그리고 문법이 부족하다보니 서술형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최대한 bullet point로 간략화하여 설명하고, 필요시 세부적인 설명에 대해서는 주석을 통해 전달합니다.

이러한 노력들로인해 공문을 보내거나 공식적으로 온 요청에 대해 회신을 하는 메일을 작성할 때 상당한 시간 투자가 요구되기는 하지만, 성급하게 조금 잘못된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 보다 약간은 지연이 되더라도 오해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상호간 시간을 더 아낄 수 있다는 것을 이전에 경험으로 배웠거든요. 특히나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경우에 말이죠. 그래서 한글로 된 메일이나 글을 작성 할 때에는 그냥 의식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두고 줄줄줄 작성한 후에 마지막 검토라고는 수신인 리스트와 첨부파일 여부정도만 하지만, 영문 메일을 작성 할 때에는 일부러 시간을 투자하여 각종 Visual Aids도 만들고, 두세 번 다시 읽어보며 부족한 영어실력에 말도안되게 장문으로 작성된 내용은 여러 문장으로 다시 잘게 쪼개고, 그래도 스스로 자신이 없으면 bullet point로 바꾸고, 중요 내용이나 키워드에는 Bold체와 Italic체를 섞어주고 Underline이나 폰트 색을 바꿔가며 조금 틀린 문법이라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바꾸고 또 바꿔서 보냅니다.

후회되는 과거라 할 지라도 무엇이건 결국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제 아내의 말이 다시금 생각나는 대목인데, 한국에서 기술영업, 기획, 수출팀에서 근무 한 경험이 도움이 되더군요. 일단 기획, 기술영업을 하면서 하루에서 몇 개씩 Presentation 자료들을 만들면서 훌륭한 미적 감각을 지닌 도형을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PPT나 OneNote 등을 이용해 최대한 핵심을 간추린 챠트나 도형을 만들어내는 기술을 몸으로 익혔고, 해외 사업자나 법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문장형 이메일 보다는 눈에 들어오기 쉬운 Bullet Point형 메일을 작성하는 것 또한 경험을 통해 몸에 익혔는데, 이러한 경험들이 지금 이렇게 도움이 되더군요.

또한 간혹 Thank you letter나 요청/요구를 빙자한 메일 중에는 은근히 우리 팀을 공개적으로 까면서 개선을 촉구하는 메일들이 있기도 한데, 이 경우에도 공돌이가 아닌 분야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약 공개적으로 까는 것이라 할 지라도 정말로 우리의 잘못이라거나, 우리가 인지하고는 있지만 일단 받아들이고 넘어간 technical debt인 경우에는 지체없이 Sorry 를 날립니다. 혹자는 북미 문화에서 Sorry를 남발할 경우 자신의 가치가 깎이는 것이고 다른 이들이 자신을 우습게 여기는 길이기에 가능한 sorry라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Sorry for the inconvenience." -> "Thank you for your patience and understanding."

이런 식으로 돌려서 말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 성격의 문제인지, 그냥 습관인지는 몰라도 이런 문장 작성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그냥 기존 습관대로 Sorry를 날립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저를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다른 메시지를 빙자하여 돌려까기를 하는 정치적인 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의 경우 열에 여섯 일곱은 근본적인 잘못과 오류가 자신에게 있기에 이를 덮고 우리쪽 잘못으로 물타기를 하기 위해 보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케이스에도 역시 한국에서 개발을 떠나 근무했던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정도의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상당한 전투력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이미 코너에 몰린 상황이라 뭐든 보이면 다 물고 뜯을 자세가 되이있는 경우인지라, 만에하나 나의 잘못이 정말로 하나도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성적/논리적/이론적/기술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려들면 영어도 딸리고, 언어적 기술도 부족한 제가 공개적으로 넉다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아무리 잘 싸워봐야 양쪽 모두 거지꼴이 되는 진흙탕 싸움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이런 메일에도 영혼은 없지만 일단 Sorry를 날립니다. 하지만 단순한 사과 레터가 아닌 약간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섞어서 보냅니다.
정치적인 메시지란 여러가지 케이스들이 있을텐데, 예를들면 이렇습니다.
사과를 하고, 시비를 건 당사자의 실수나 오류에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최대한 자제합니다. 대신, 그들이 범하고 있는 큰 실수나 오류, 혹은 그들 제품의 문제점을 보여 줄 수 있는 실측 데이터를 첨부하고 메일을 주의깊게 읽을 경우 그들의 잘못이라는 것을 해석 할 만한 다른 비교 데이터, 혹은 데이터에 대한 해석 등을 추가합니다.

정말 정치질을 잘하는 사람들의 경우 이런 정치적인 답장을 받으면 그냥 거기에서 싸움을 중단하고 자신의 단점을 감추기 위해 공격할 다른 쉬운 대상을 찾습니다. 정치질과는 보통 무관하더라도 제 메일의 뜻을 이해 할 만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내재적 문제점에 대해 자각하고 더 이상 저희 쪽을 물어뜯지는 않죠.
제 레터를 그냥 말 그대로 사과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이 경우에는 정말 답이 없습니다. 적당한 무시와 함께 저 역시 본격적인 반격을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본격적인 반격은 제가 아니더라도 팀 내에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아주 좋아하는 Technical debate인지라 영어가 딸리는 제가 빠져도 다른 동료들이 주저없이 콜로세움으로 뛰어들기에 제 입장에서 더 이상 부담 될 일은 없죠.

이렇다보니 저는 "매니징"을 하는게 싫고 "개발"을 하는게 좋아서 캐나다 이민까지 왔는데, 회사에서 매니져 롤에 대해 저에게 말을 꺼내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네요.
만약 제가 더 나이가 들어서 정말로 제 머리와 체력으로는 기술을 따라가기 어렵게 되었고, 이메일 뿐 아니라 말하기와 듣기도 잘하게 된 상황이라면 고려 할 수도 있는 제안이겠지만, 지금 저의 열정과 영어실력을 고려하면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니지요.
또, 지금 이메일을 비교적 잘 쓰고는 있다지만 공식적인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을 밥먹듯 해야하는 상황이라면 지금과 같이 한타 한타 공들여서 이메일을 작성할 수도 없기에 저의 미천한 영어실력과 필력, 부족한 지식과 얕은 안목이 금방 드러날 수 밖에 없기에, 딱 지금 수준이 적당한 것 같습니다.

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가뿐한 주말과 언짢은 시간낭비

오래간만에 상쾌하고 가뿐한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주말이야 매 7일마다 찾아오는 것인데 '상쾌하며 가뿐한' 주말은 정말 오래간만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계속 주말에 제가 해야만 하는 일들 혹은 주말에 제가 계속 공부나 연구 혹은 고민을 해봐야만 하는 일들을 안고 주말을 맞이했었는데, 이번 주에는 머릿 속을 하얗게 비워두고 쉬어도 될 만큼 뒷일을 남겨두지 않아도 되는 주말입니다.

그런데... 제 업무 자체와는 상관이 없지만, 이번 주의 목요일 금요일의 시간 낭비 자체와 시간 낭비를 하게 된 회사 정책때문에 조금 언짢은 기분이 있었습니다.

지난 달 말에 저희 팀원 중 한 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자발적인 퇴사가 아닌 해고였죠.

회사의 기본 견습 (probation) 기간은 3개월입니다. 법적으로 probation기간동안은 회사에서는 아무런 제약없이 직원을 해고 할 수 있기에 채용 프로세스를 통과 했어도 이 probation을 통과 해야 사실상 진정한 정직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저도 이 친구의 probation 평가 리포트를 작성하기도 했지만, 첫 3달이 지났을 때 정말 애매한 상황이였습니다.
입사할 때 조건이 시니어급이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그간 경험이나 나이로 미루어 봤을때, 그리고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시니어로 봐도 될 것 같은데, 조금은 새로운 분야에 대해 논할때에는 시니어의 고집과 함께 쥬니어급의 이해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실제 퍼포먼스가 쥬니어 급이였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이해도가 쥬니어급이라고 했는데, 새로운 일은 거의 하지 못했죠. 기존 그가 익숙한 분야의 업무는 말로는 청산유수이고 모든 일이 조만간 끝날 것인 것 처럼 말을 했지만 매일매일 팀 sync up 미팅을 할 때마다 같은 업무내용에 대해 "곧 끝난다" 라는 말만 며칠간 반복이 되어 생각보다 일의 진척이 늦었었죠.
그렇다보니 처음 3개월 이후에도 Extended Probation이라 하여 추가 3달의 견습 기간을 거치게 되었는데 결국 그 기간동안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못했고, 우리가 바라던 만큼의 수준을 보여주지 못해 어느날 갑자기 해고되었습니다.

원래 매니져 포함 6명인 작은 조직에서 1명이 줄어드니 이래저래 일이 몰리고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그렇다보니 제가 원래 잘 하지 않던 Ops쪽 일도 해야하여 주말에는 Ops 관련 툴들을 공부하거나 밀린 개발관련 일들을 해치우거나, 혹은 업무시간 중 바빠 미처 확인하지 못한 새로운 pilot 서비스들을 돌려보느라 이래저래 바빴습니다. 사실 그 친구가 함께했던 기간 중에도 항상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또 그가 말한 만큼의 성과가 안나와 매 스프린트마다 마지막 주차가 되면 뒤쳐진 일들을 쳐내느라 바빴는데,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티가 난다고, 그가 빠지니 그 정도가 더 심했었죠.

회사에서 주말근무를 요구하거나 반드시 각 스프린트마다 주어진 일을 마쳐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은 아닌데, 이건 약간의 사람의 성격 문제인 것 같아요. Sprint planning에서 약속한 업무들을 모든 sprint마다 다 해치우자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연속으로 3-4 스프린트에서 목표 달성을 못하는 상황을 제가 차마 지켜보지 못하여 저 혼자라도 더 달려서 어떻게든 목표 달성을 위해 달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전까지는 피동적으로 DevOps 포지션의 지원자를 구하다가 지난달 말 부터는 외부 헤드헌터들에게도 요청을 하는 등 조금은 더 공격적으로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금요일, 드디어 한 명과 인터뷰가 잡혔습니다.

월요일 밤에 매니져를 통해 지원자의 이력서를 받았는데, 모국인 우크라이나에서 석사를 마쳤고 전체 경력은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특히나 좀처럼 구하기 힘든 DevOps 포지션의 경력이 최근 3년간 있었죠. 그래서 지금 그가 일하는 회사의 CD 수준을 파악하고자 이력서에 기재된 회사명을 검색 해 보았는데, 좀처럼 이렇다 할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회사 공식 웹사이트는 찾을 수 없었고 페북 그룹이나 링크드인에 그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보이는 정도였죠.

그래도 지난 경력을 보니 우크라이나 석사 졸업 후 4-5년 정도 캘리포니아에서 웹 개발자로 일을 했고, 이후 모국으로 돌아가 다시 2-3년 정도 자바 개발자로 일을 했으며, 최근 3년간은 토론토에서 DevOps 및 자바 개발자로 일을 한 경력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 팀에 저만 자바 개발자이다보니 저희가 쓰는 오픈소스 툴에 contribution 할 일이 있을경우 그 일들이 저에게만 몰리는 상황이라 다른 자바 개발자가 있었으면 싶었거든요.

그래서 목요일 밤,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코딩을 시작했습니다.
손코딩을 통한 간단한 알고리즘이나 369 게임, 혹은 fizz-buzz 같은 것을 구현하는 테스트를 하기 보다는 실제 코딩을 통해 그의 코딩 습관이나 실력을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터뷰를 보기 전에 온라인 코딩시험을 치루기는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저희 회사 HR은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야 온라인 시험 점수를 알려줬거든요. 더구나 저는 살짝 목표 지향적인지라 업무와 무관한 지식들을 시험하기 보다는 실무에서 실제로 하는 일이나 할 법한 일과 유사한 일에 대해 실무적인 능력을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준비했던 문제는 지금도 저희 CD 파이프라인에서 사용중인 저희 자체 VM 클라우드 관련된 것이였습니다. VM 클라우드에서 동시 처리능력과 파이프라인 처리 병목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간단한 모니터링 툴을 만드는 상황을 가정하였고, 각 데몬에서 리포팅한 로그들을 가져와 실제 운영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필터링하는 것을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실제 문제는 매우 단순화 하여 각 VM 별로 VM 생성시간과 종료 시간의 array를 입력값으로 주었을 때, 특정 moment에 운영중인 VM의 최대 갯수가 몇 개인지를 구하는 method를 구하는 문제가 한 문제였고, 두번재 문제는 각 VM Host의 매니져 서비스에서 로그를 가져와 각 VM별로 생성 요청을 받은 시간과 생성이 종료된 시간 로그를 array 형태로 뽑아낸 뒤, 2분간 처리하는 최대 VM 생성 개수가 몇 개인지를 구하는 method를 만들라는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VM이 생성된 이후 빌드를 돌리거나 테스트를 돌리는데에도 리소스가 많이 사용되지만, 내부 클라우드에서 가장 병목이 되는 것은 Disk IO였는데, VM이 생성 될 때 마다 20GB가 넘는 VM Image 파일이 복사가 되기에 성능에 가장 크리티컬 했던 것이 Disk IO 문제였던지라 실제로 툴과 스크립트를 만들어 의사결정에 활용될 만한 metric들을 뽑아낸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를 내는데 코딩을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어진 몇 시간의 기술 인터뷰 중에 가능한 짧은 시간동안 코딩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였죠.
그래서 먼저 제가 뽑아온 데이터 중에 가장 데이터가 복잡하여 연산 중 작은 오류가 있으면 오답이 나올만한 부분을 골라내고 나머지 데이터는 삭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일히 손으로 계산을 해 보았고, 제가 계산한 값과, 테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Unit Test 코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각 문제별로 시간이 얼마나 주어져야 할 지를 판단하기 위해 직접 method 구현을 했고, 문제의 배경이나 요구사항, 테스트 데이터가 어떻게 주어지고 원하는 값이 어떠한 것일지를 이해 할 만한 설명 문서도 작성을 했습니다. 물론 구두로도 그 자리에서 설명을 할 예정이였지만, 문제를 풀어나가며 생기는 질문들로 인한 지연을 최소화 하고 싶어 그렇게 준비 했죠. 그리고 코딩 테스트용 문제를 다 만든 이후에는 로그에서 timestamp를 datetime으로 변환하는 것과, 로그에서 regex로 읽어올 데이터만 뽑아내는 것 관련 행여나 시간 낭비를 할까봐 답안을 작성 할 class 내에 관련 기능은 미리 method를 작성해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래간만에 나서는 인터뷰인지라 인터뷰에서 질문 할 내용들도 추렸습니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 시작한 인터뷰 준비는 좋은 동료와 함께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먼저 매니져가 인터뷰를 시작 했습니다. 매니져 인터뷰가 끝나고 제가 면접장으로 가는데, 매니져가 저를 붙잡고 짧게 말하더군요.

"아마 한 두개 정도의 질문만 하면 그가 어떤지 바로 알 수 있을꺼야"

의미심장한 말이였습니다. 몇 마디의 말로도 고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거나, 정말 아니거나...

그런데 정말 불행하게도 그는 전자가 아닌 후자였습니다. 일단 영어가 정말 안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하면서 거의 처음으로 저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났습니다.

그래도 처음 두개 정도의 질문을 하면서는 그래도 10년가량의 경력도 있는데, 언어적 문제로 인해 답변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더 깊게 들어갈수록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결국 제가 준비한 코딩 문제는 차마 꺼내지도 못했고, 일반적으로 어느 회사를 가건 질문하는 기본적인 Java 관련 질문들만 하고 끝이 났습니다.

아... 아까운 내 시간... 잠도 줄여가며 인터뷰 준비를 했건만, 지금까지 봐온 인터뷰 중 가장 준비가 안된 인터뷰였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의 온라인 코딩 테스트 성적이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매니져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아까 나에게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 그런데, 혹시 HR에서 codility test 점수 알려줬어?"

"응. 받았어."

"몇 점이야?"

"0점"

"응? 뭐라고?"

"0점"

미리 점수를 안알려주는 것이야 선입견 방지를 위해 그럴 수도 있다지만, 0점 임에도 인터뷰를 arrange하는 HR은 도대체 뭐지요?

덕분에 저와 매니져가 업무시간 중 본 손실은 총 3시간 가량입니다. 저도 인터뷰 준비를 위해 문제를 만드느라 두세 시간 정도 개인 시간을 쓰기도 했지만, 매니져 역시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 어젯 밤에 몇시간 동안 인터넷을 헤맸다고 하는군요.

사실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수 년 전에도 다른 팀 시니어와 매니져가 HR 리크루터에게 이와 관련된 항의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이후에 개선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유효하더군요. 온라인 테스트 점수를 통해 미리 사람을 걸러내면 좋은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나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회사에 오면서 봤던 온라인 시험을 볼 때 웹 환경인 IDE 툴에서 개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처음 10분 정도는 '이게 뭐지?' 하다가 흘러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풀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래서 평소 실력대비 점수상으로는 20-30점 정도가 낮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0점이라도 면접을 봐야 한다니요. 0점이라면 말 그대로 주어진 문제에서 부분점수조차 획득하지 못한 것인데, 어떤 실력인지 확실히 검증이 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확실히 수준 미달의 실력이라는 것이 검증된 사람과 면접을 본다는 것이 정말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DevOps로 옮긴 이후로는 처음 interviewer로 나섰던 자리인데다, 기존 팀과는 다르게 팀 차원에서 공동으로 준비한 인터뷰 문제들도 없는 상황에서 나간 인터뷰라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정말 죽쒀서 개줬다는 말 처럼 너무나 허무하고 언짢은 기분이 들더군요.

지원자 일정에 따라 다음주 중으로도 인터뷰가 하나 더 잡힐 수도 있다고 하는데, 다음 번에는 제발 이런 케이스가 아니길 바래봅니다.

2017년 11월 11일 토요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의 중요성

근묵자흑, 유유상종 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자성어들이 많고, 그 중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인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일텐데, 이민에 있어서도 좋은 사람들을 얼마나 만나게 되느냐가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민을 하기 전에 많이 보게 된 이야기는 "한국 사람을 가장 조심하라" 였습니다. 먼저 이민 간 사람이 새로온 이민자를 등쳐먹는다거나, 새로 온 이민자들이 그들을 도와주려던 이민 선배들을 벗겨먹는 이야기 등등 참 많이도 봤습니다.

그런데 처음 캐나다에 랜딩을 한 순간부터 제가 만났던 한국분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였습니다. 

캐나다에 랜딩을 한 순간 이민관 이후 가장 먼저 만난 분은 제 임시 숙소였던 민박집 주인 내외분인데,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민박집에 머무는 동안 현지 사정에 어두운 저같은 새내기들을 위해 본인들이 알고있는 다양한 정보들과 노하우들을 알려주시기도 했고, 엔지니어로 일하시는 아저씨를 통해 이쪽의 직업시장이나, 구직 팁 등을 안내받기도 했고 저와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고 비슷한 또래의 다른 사람들을 소개시켜주셔서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셨죠.
또, 가족들과 함께 살 만한 아파트를 구해 민박집을 떠날 때에도 새로 구한 아파트까지 차로 왕복 해 주시며 제 짐을 다 옮겨주셨고, 쌀은 무거워 대중교통으로 오가며 구매하기 힘들다며 한인마트까지 태워주셔서 쌀 구입도 도와주시고, 또 당분간 홀애비 생활이 걱정되셨는지 큰 통에 반찬도 직접 만드셔서 따로 챙겨주셨었고요.

그 이후에도 좋은 분들과의 만남은 지속됩니다. 가족들이 캐나다로 오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학교생활 적응이 가장 큰 문제가 되던 시절, 같은 학교에 아이들이 다니는 많은 학부형들을 통해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들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차없는 생활을 계속 했었는데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학부형 집에서 장을 보러 갈 때, 제 아내가 항상 같이 다니며 차가 없이도 한국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또 나중에보니 저희 아파트 바로 맞은편 집은 한인 노부부가 사시는 집이였는데, 그 분들을 통해서도 이런저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저희 부모님이 캐나다에 잠시 머무시는 동안 그 분들이 좋은 벗이 되어주시기도 했고, 저희같은 젊은세대는 알 수 없었던 제 아버지께서 궁굼해 하시던 여러가지 정보들을 잘 알려주시기도 했고요.

뿐만아니라 짧았지만 학교를 다니던 기간 중 만난 같은과의 많은 동생들과 형님들과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좋은 벗이 되어 멀리서라도 서로 응원해주고 격려하며 잘 살고 있고, 토론토를 벗어나 이사를 온 이후에도 아이들을 통해 이런저런 경로로 알게된 다른 한국인 이민자 가정들과 여러가지 도움을 서로 주고받으며 잘 지내고 있지요.

만약 저와 제 아내의 인복이 좋지 못하여 여러 글에서 보았던 악덕 민박집 사장님들을 만났고, 이번에 경찰에 잡힌 김OO씨 같은 사람을 통해 가족과 살 콘도를 계약하게되어 사기를 당하고, 서로 힐난하고 질투하고 헐뜯는 한인 이웃들을 만났었다면, 또 바로 이웃집에도 친절한 한인 노부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글에서 보았던 노랜내가 진동하는 이민자 노부부를 만났다면, 친절하고 서로 배려할 줄 아는 이웃들이 아니라 서로 힐난하고 비난하고 헐뜻는 이웃들을 만났다면 지금과 같은 삶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도 이민 카페들에 수두룩하게 널린 악랄한 한국인 이민자들의 스토리들이 정말 이 정도일까 싶기도 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지난 4년간 그런 분들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요.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혹은 각자의 삶의 무게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매너 혹은 말투등이 다양했고, 간혹 서로 맞지않는 성향인 경우 조금 불편하게 느끼거나 살짝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건 그냥 서로간 궁합이 잘 안맞는 정도이지 여러 스토리에서 보여지는 범죄자에 가까운 그런 행위들은 아니였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또 다른 이민자들을 만날 때 더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각 인종에 대한, 혹은 출신 국가에 따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 심지어는 능력에 대한 다양한 선입견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저는 이민 전에 인도 개발자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제 머릿 속에 그들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잘못된 선입견의 예...
개발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인도 연구소에서 간혹가다 특정 프로젝트로 인해 서너달 가량 파견을 나오거나 장기 출장을 나오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받았던 제일 큰 인상은 상당히 스마트하고 쉬지도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출장자인지라 인도 연구소의 근무일에 맞춰야 해서인지 몰라도 한국 휴일이 되어도 출근해서 일을 했고, 제가 토요일에 나와도 일요일에 나와도 그들은 항상 자리에 있었습니다. 또 쉬지도 않고 일을 하기도 했지만, 상당히 그 퀄리티가 높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캐나다에 오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인도인 개발자들에 대한 선입견이였는데, 지금은 이것이 상당히 왜곡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삼성에서 만났던 출장자들은 상황상 상당히 스마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인도 내에서 삼성 연구소는 상당히 괜찮은 직장이며 그 곳에 들어오기 위해 경쟁이 치열한 곳 중에 하나입니다. 뭐 좋은 직장으로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회사 자체가 좋아서도 있지만, 이 곳의 경력을 발판으로 실리콘벨리 등으로 진출하기에 좋기에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양질의 개발자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그러한 양질의 개발자들이 모인 조직 내에서도 나름 일을 잘하는 개발자들이 추려져 본사 프로젝트로 파견을 나오는 것이니 일을 잘하고 또 열심히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였죠. 또 저는 본사 소속이고 그들은 인도 연구소에서 파견나온 상황인데다, 그들에게는 그들 뿐 아니라 그들의 팀의 일년 농사가 저희팀과 함께하고 있는 프로젝트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보니 험블할 수 밖에 없기도 했고요.

캐나다에 온 이후 이러한 잘못된 선입견들은 하나씩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1%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외국에 나온 인도 사람이면 다들 상류층이나 엘리트라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였습니다. 짧게나마 학교를 다니며 많은 인도인 친구들을 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평균적으로 그들의 생활은 일반적인 한국인 유학생들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또 그들 중 저와 가장 가깝게 지낸 그룹에 있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인도에서도 학자금 융자를 통해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 여기에 올 때에도 온 친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비자를 받아 온 것이고, 캐나다에서 생활비와 학비도 주 20시간 알바만으로는 당연히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밤샘 캐쉬쟙 알바를 뛰면서 졸업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친구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그래도 학교 졸업에는 크게 문제가 없던 것 중 하나가, 인도인 친구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과목별 족보를 가지고 있더군요. 일부 과목들의 경우 시험 시작 30분 만에 인도인 친구들은 모두 시험을 마치고 나가기도 했었습니다.

또 인도 사람은 수학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인도인 개발자는 매우 능력이 좋다는 것도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많이 깨졌습니다.
실제 인구 비중에 비해 개발자 중 인도인의 비중이 더 높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공계가 상대적으로 강한 국가들인 한국, 중국, 이란, 구 소련연방 국가들 (러시아, 우크라이나, 발틱3국 등) 출신 이민자들도 똑같습니다. 개발자 중 한국인 비율도 일반적인 인구비중 대비 높고, 구 소련 국가들 출신 개발자 비중도 일반적인 인구비중 대비 높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인도인 개발자들을 보게 되었는데, 여러 부류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기존의 제 선입견이 말 그대로 선입견임을 깨닿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정말 똑똑한 사람도 간간히 있기도 하지만, 이 사람이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어리바리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숫자나 논리에 대한 센스는 확실이 서구유럽 출신 이민자나 북미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에 비해 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저와 같은 일반적인 한국사람들이나, 구 소련연방이나 중국인들에 비해서 특별하게 우수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workaholic이라는 선입견 역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무너졌습니다. 그냥 제가 한국 직장에서 보았던 것 처럼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적당히 하는 사람도 있고,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절대적 책임감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는 나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처음 만난 인도인 개발자나 인도 유학생들이 제 선입견들과 정확히 맞았다면, "응 걔네들은 원래 그래." 라는 생각이 오히려 더 강해져 그 이후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보게 되더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일텐데,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고 그들도 사람이기에 각 개인마다 다른 특성이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닿게 된 것이죠.

그러고보면 유치원 때 부터 한강의 기적 등을 이야기하면서 주구장창 들어온 이야기가 "한국인은 근면 성실하고...." 라는 말인데, 이 말도 역시 잘못된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DNA에 근면과 성실이 무조건 박혀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선민의식같이 한국인은 타고난 근면 성실맨이라는 이야기도 잘못된 이야기 인 것 같아요. 한국인 중에 정말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도 있겠지만, 조금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제 생각에는 한국인 스스로를 표현하는 이런 말이 족쇄가 되어서 사회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근면 성실해야 한다는 강요아닌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인종차별이 상대적으로 심한 한국에서 수십년간 자라고 교육받고 생활을 해 온지라 여러 인종과 민족, 국민들에 대해 많은 선입견들이 제 머릿 속에는 아직도 남아있고 알게모르게 영향을 주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가능한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그러한 배경은 최대한 걸러내고 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캐나다 일반 여염집의 할로윈 장식 위엄

안녕하세요. 할로윈은 거의 1주일 가깝게 지난 상태이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소개를 할 까 싶어서 포스팅을 합니다.

이번 주에는 회사일로 바빠서 일찍 퇴근해도 자정까지 서재의 PC 앞에 앉아있었고, 아니면 보통은 일을 하다보니 저녁 8-9시가 되어버려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면서 한 주를 보냈네요.

하지만 아이들이 아기다리고기다리는 할로윈 날만은 미리 오후 3시쯤 퇴근을 해서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작년 할로윈에는 그래도 날이 따뜻했던 편이라 아이들이 준비한 costume을 마음껏 뽐내고 다닐 수 있었는데, 올 할로윈에는 날이 다소 춥다보니 저희 애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힘들게 준비한 costume위에 패딩점퍼 등을 걸치고 다녀서 얼굴 분장이나 악세서리를 따로 안 한 경우에는 평상복인지 구분이 안되기도 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참 많았네요.

제가 이사를 온 이후로 매 해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매번 찾는 집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집에 이런 특정한 날 마다 찾는 집은 지인이나 고등학교 때 선생님 등 고마운 은인, 혹은 가족의 집이였는데, 이 집은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집입니다 :)

그런데 저 말고도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집을 찾아가요.

왜나고요?

일단 긴 말 필요없고, 아래 사진과 동영상들을 보시면 이해 되실겁니다.

위에 Hell Gate 보이시나요? 놀이동산 귀신의 집이냐고요?
아니요, 그 가정집의 앞마당입니다. 앞마당에 마른 옥수수 줄기로 담장을 만들고 지옥문을 설치했군요.
T-REX도 저처럼 이 집에 구경을 왔네요.


지옥문 앞을 지키는 해골병사. 움직이는 인형이라 사진이 계속 흔들려서 나오는군요.


지옥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늑대인간 아저씨

그 뒤에는 해골 마차도 있군요

흑마법사와 그를 지키는 늑대

뒤에 보이는 건물이 지금 이렇게 꾸민 집입니다.  진짜 놀이동산 아니고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납골당 앞에는 강한 진동이 나오는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어요.
나무다리에서 갑자기 진동이 나와 사람들이 놀라 바닥을 쳐다볼때 즈음에 이 납골당 안의
좀비가 갑자기 3-4m가량 앞으로 튀어나오며 두 번 놀래킵니다. ㅎㅎ


이건 뭔지 모르겠어요 엎드려있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가고일도 보이네요

아저씨 칼들고 흔들면 위험해요
 
역시 이 날 장식의 최고 압권은 불쑈!!!
동영상엔 조금 허접하게 잡혔지만, 진짜 화염이 나오는 불쑈였어요.
심지어 저 앞에가면 따뜻했다는...














이 집 주인은 집을 이렇게 꾸며놓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앞뒷마당에서 소리를 질러가며 즐기고 있는 와중에 핏자를 배달시켜 집 안에서 저녁을 먹더군요.

작년에는 사실 이 집 주인 포함 온 가족들이 앞뒷마당 구석 구석에 인형인 듯 숨을 죽이고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며 사람들을 놀래켰었거든요. 대표적으로 제일 마지막 사진에 가면 쓴 수도승 인형. 이 인형 10개 정도가 양쪽에 도열해 있는 것이 작년 뒷마당 출구쪽 모습이였는데, 그 중 한 인형은, 인형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였죠. 올해에도 이 인형 앞에서 무언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조심조심 걸어갔는데, 올해는 모두 다 인형이였네요.

대체 무엇을 하시는 분이 이 집의 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마어마하게 할로윈과 크리스마스를 꾸민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간혹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때, 특정 회사에서 일종의 광고를 위해 가정집을 꾸미는 경우들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출구와 입구쪽에 브로셔가 준비되어 있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눈에띄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어떠한 광고나 홍보가 전혀 보이지도 않네요.

아마도 그냥 개인적인 취미? 인 것 같네요. 여하튼 이 가족 덕분에 매 년 할로윈을 재미있게 즐기고 있답니다.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캐나다에서의 삶의 여유란?

지난 한 달여간 저희 집에 장모님이 머물다가 가셨습니다.

당초에는 2달 조금 넘게 계실 예정이였는데, 이 곳에서 생활이 언어나 교통편 등의 문제로 제약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조금 무료하셨던 것 같더라고요. 다른 이민자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아도 처음에는 아들딸도 보고, 손주들도 보고 싶어서 오실 때 항공권이 비싸다보니 몇 달 일정으로 잡고 오시지만, 막상 오고나면 자녀들이 휴가를 내 봐야 며칠 혹은 1-2주 뿐이니 남는 시간에 무어라도 하셔야 하지만 캐나다에는 지인도 없고 언어도 불편하니 몇 주가 지나면 항공권을 다시 변경해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이 있더군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 중 한 마디가 생활과 삶의 여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원래도 필력이 아주 부질없지만, 오늘의 글은 그냥 머릿 속에서 터져나온 생각을 정리없이 쓰는 글이라 정말 난잡한 낙서같이 될 것 같군요.

아내의 사촌언니는 이민은 아니지만 주재원과 주재원 연장으로 지금 10년 넘게 중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중국의 물가는 상대적으로 싸다보니 아이들 교육도 필요하면 모두 과외를 시키고 대부분의 집안일은 사람을 가사도우미를 써서 합니다. 아무래도 인건비가 비싼 캐나다에서 사는 저희는 가사도우미를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고, 제 아이들도 과외나 학원을 다니기도 하지만 예체능 쪽만 그러하고, 아이들의 한국어, 영어, 수학 등 공부와 관련된 것은 제 아내가 주로 붙잡고 시킵니다. 얼마 전에 중국 처형네 놀려갔다 오셨던 터라 캐나다에 오셔서 저희가 사는 모습을 보시니 아무래도 제 아내의 생활 측면에서 비교가 되면서 조금 속상하셨던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 아내에게 캐나다 생활에 만족은 하고 있는지, 또 이민을 온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이야기를 해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만족하고 후회 없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저 역시도 캐나다에 온 것에 후회나 미련은 없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온 이유와 궁극적 목적은 단 하나, 제 직업이였습니다. 다시 Developer가 되고 싶었고, 또 평생 그 일을 즐기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일단 "평생 즐기면서" 부분은 앞으로 수십년간 더 살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다시 Developer가 되기"는 성공을 했으니 현재까지 진척률은 좋은 것 같고 이에 상당히 만족합니다.

그런데, 이 목표를 위해 캐나다까지 오게 된 것은 당시 저의 어정쩡한 나이에 개발 경력이 단절된 상황에서 개발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정확히 말하면 전혀 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죠. 정말 많은 것들을 내려 놓았다면 무급이나 열정페이 인턴이나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스타트업에서 지분을 일부 받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 할 수도 있었고, 육아휴직 기간 중 창업을 준비하던 친구의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들어가 개발을 다시 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한국에서 다시 한 번 Developer가 되기위해 노력하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기 싫어서였습니다. 한국에서 Developer가 된다면 페이가 얼마건 저희 부부에겐 가장 암흑기였던 시간으로 돌아가 저녁/주말/휴일 없이 일을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았고, 당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내에서는 지금만큼의 연봉이 전혀 보장되지 못했고, 일정규모가 되거나 자체 수익 솔루션이 없는 IT 회사로 간다면 직위가 올라갈 수록 개발보다는 결국 관리나 영업으로 빠져야 할텐데, 그렇다면 평생 개발자의 목표에 반하게 되니까요.

즉 다시 한 번 당시의 생각으로 돌아간다면, "개발자가 되고싶고, 이 일을 평생 하고싶은데, 즐기면서 하기 위해 충분한 보수를 받으면서도 충분한 개인시간을 보장받고 싶다."가 저의 생각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제 목표에서 직업 관련은 이미 이루었다고 치고 삶의 영유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이 삶의 여유인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돈? 저녁이 있는 삶? Work-Life Balance? 노후에 대한 안정감? 시간?

노후에 대한 안정은 한국 보다는 나아요. 한국도 국민연금이 잘 되어있긴 하지만, 캐나다의 연금제도가 한국 보다 살짝 조금 더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하기는 합니다. 토론토 도심같이 집세가 비싼 곳에서 거주 할 만큼의 돈은 안나오지만, 시골의 한적한 동네에서 자신의 집 재산세를 내거나, 렌트비를 내면서 살기에는 살만한 수준의 돈이 나옵니다.

충분한 연봉? 이건 사실 아닌것 같습니다. 평균적인 개발자 임금 수준은 한국의 그것에 비해 확실히 높기는 합니다만, 한국 대기업 기준으로 보자면 썩 높지는 않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한국보다 물가도 더 비싸고, 최저임금도 2배 이상 높고 세율도 한국보다 많이 높으니 저도 처음에는 캐나다에서 시니어 개발자가 되면 20만불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회사 후배 중 실리콘벨리에서 일을 하고있는 후배에게 듣기로, 실리콘 벨리의 인턴 개발자 연봉이 요즘 10만불 언저리라고 했고, 저는 그 정도의 임금수준이 북미 전역에서 비슷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캐나다에서 인턴이나 엔트리 레벨 개발자의 경우 4.5-5.5만불 정도의 임금을 받고, 시니어가 되어도 10만불도 못받는 시니어들이 적지않게 있었습니다. 세율과 물가를 무시하고 환율 차이만 계산하여 고려해도 엔트리 개발자의 임금은 사원 수준이며, 시니어의 연봉도 대리에서 과장 수준이였습니다. 과장 이상에 평가 고과가 좋은 경우라면 세전 절대금액도 캐나다 시니어 개발자 임금 이상을 수 있는데다 한국은 캐나다에 비해 소득세율도 낮고 물가도 낮으니, 소득에 대한 기회비용을 계산해보면 한국에서 더 높은 소득을 올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캐나다에 가면 한국보다 더 나은 소득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분들도 가끔 있는데, 사실 소득 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처임금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2배 이상 높지만, 최저소득과 그 언저리를 벗어난 일자리들의 임금수준을 보면 한국의 중소기업 보다는 나아도 평균 임금수준이 높고 상여금이 많이 나오는 한국의 대기업들과 비교 시 썩 높지 않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다소 찬밥 신세인 전기/배관공 등 기술을 요하는 trade 일자리들의 경우 한국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습니다. 보통 지식노동자 일자리들은 시간당 임금보다는 연봉인데, 이를 시간당 임금으로 전환 해 계산해보면, 지식과 기술이 거의 비슷한 대우를 받는 사회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다보니 지금 당장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충분한 연봉이나 이전보다 더 나은 가계수입은 아닙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이라면 장점은, 이 나라에서는 제가 시장성이 있는 수준으로 계속 제 지식과 기술을 높여 나간다면 언제까지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제 능력과 실력이 뒷받침이 된다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계속 진급을 하여 임원도 되고 부사장도 되고 사장도 되면서 언제까지건 일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이 곳에서는 저의 몸값에 걸맞는 수준의 실력을 유지만 하면 됩니다. 즉 계속 치고 올라가야만 생존이 가능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물러도 생존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 수십년이 남아있긴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은퇴를 할 시기가 되었을 때 지금까지의 누적 소득을 생각하면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과 Work-life balance는 어떨까요?
간혹 캐나다 등 복지가 발달된 국가들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들이 있는데 그 나라 국민들은 게으르다는 인식 입니다. 하지만 이미 제가 선입견이라고 말 한 것 처럼 잘못된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요즘 교육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교육 받을 때에는 '한국인은 근면 성실하고....' 라는 말을 자주 교육받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한국인들이 근면성실할까요? 한국인의 DNA에는 근면과 성실이 기본으로 자리잡은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사회적으로 근면 성실을 미덕으로 여기며, 사회는 각 개인에게 모두 근면 성실할 것을 강요하고, 또 근면 성실의 영역이 주어진 시간을 외에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책무 영역에 투자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근면 성실하게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노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을 싫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인의 삶 기준으로 보기에 캐나다 사람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책임감이 낮다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제가 많은 부류의 캐나다 사람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바빠도 사전에 계획한 개인 휴가가 있다면 뒤도 안돌아보고 휴가를 갑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떠나는 휴가에 대해 제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 시간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업무시간을 벗어난 시간이라면 비록 몸은 사무실에 자리하고 있지도 않고 업무시간 외 근무에 대해 주어진 책임은 없지만, 관련 업무에 일이 생기면 즉각 반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주 주말 밤에 저희 팀에서 관리하는 서비스들의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이상동작이 보고되었습니다. 메일을 본 저는 회사 PC로 원격 접속해서 로그 분석을 하고 하나씩 수정 및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30여분이 지나자 매니져 포함 6명의 팀원 중 4명이 접속을 해서 매신져를 통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1시간 정도 흘러 root cause 분석이 완료 된 시점 즈음에는 개발팀 VP도 접속해서 같이 확인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머지 2 명은 계속 오프라인 이였지만, 그들이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질책을 받거나 문제가 될 일은 없습니다. 그냥 각자 스스로 가진 책임감의 범위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에 압력을 받습니다. 영어도 공부해야 하고, 요즘은 중국어도 필요하다고 하니 중국어 공부도 하고, 업무 성과를 인정받으려면 PT도 잘해야 하니 PT 교육도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 정책에 따라 직원 일인당 특허 하나씩 보유해야 해서 특허 연구도 하고...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이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곳도 있지만, 회사가 아니더라도 방송 등 언론을 통해서도 직장인들의 자기계발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계속 행사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계속 치고올라가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기에,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어도 머물 수 없으니 반 강제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에대해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스스로 더 높은 자리로 발전을 원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들을 찾아 공부하고 익힙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그냥 현재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알고 지내는 캐네디언이 누구냐에 따라 보이는 시각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제가 회사에서 보는 대다수의 동료들은 상당히 부지런하며, 자기계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제 매니져만 해도 1달간 휴가를 내고 캐러비안에 놀러간 기간 동안 당시로서는 저희 팀에서 새로 도입하는 툴인 chef와 kitchen, 그리고 AWS 서비스 세가지에 대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고 왔더군요. 사실 이제는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닌 매니져인지라 그렇게 깊은 수준으로 기술 공부를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죠. ㅠㅠ

지금도 저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을 하고는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7시까지 일을 하면서 거의 12시간 일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퇴근은 3-4시에 하지만 퇴근 후 일을 하기도 합니다. 오랜기간 현업을 떠난 상황이라 그 시간공백을 메꾸고 싶다는 욕심도 있거니와 제 나름의 목표하는 지향점에 도달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3-4시에 퇴근을 한 다 해도 사실 그 때부터 완벽한 자유시간은 아닙니다. 그 때 부터 또 다른 환경에서 업무와 공부가 시작되지요.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모든 시간이 물리적으로 강제된 환경이 아니고, 시간에 대해 제 자율로 조절을 할 수 있기에 제 스스로만 조절을 잘 한다면 100% 만족 할 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아직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work-life balance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민 후의 생활이 정말 꿀같고 달콤하고 풍요롭다고 생각하고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구하고 생활비 대비 소득으로 보면 매우 풍족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본인인의 위치에 따라서는 캐나다에서 소득이 덜 풍족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직원에게 요구하는 수준이나 근무시간 등은 정말 꿀같고 달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차에 따른 대우를 받는 사회는 아니기에 더 인정받고 더 올라가고 싶다면 그 달콤함을 완전히 즐길 수는 없고, 어느 정도는 스스로에게 채찍 질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 위치와 자리와 대우에 만족하고 그대로 머무르고 싶다면 도태되지 않는 수준으로만 노력하면 되기에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역시나 private sector가 아닌 public sector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되겠죠. :)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이민자의 Thanksgiving Day

안녕하세요.

한국은 오늘까지 특별휴일 - 추석 - 개천절 - 한글날로 이어지는 10일간의 연휴로 알고있는데, 캐나다도 오늘까지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이였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연휴 기간을 보통 long weekend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정말 특정한 날이 중요한 경우, 예를들어서 캐나다의 개천절 쯤 되는 7월 1일 Canada Day나 12월 25일 Christmas, 1월 1일 New Year Day 같은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휴일이 "xx월 n번째 월요일"와 같이 지정이 되어있어 항상 연휴가 되기에, 일반적인 주말보다 더 길어서 long weekend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얼마나 긴 것인가를 보자면, 그냥 주말보다 조금 깁니다. 한국의 설이나 추석과 같이 3일씩 되는 휴일이 없이 모두 단 하루만 휴일이기에 토일월 3일 휴일이 되는 것이지요.

Christmas가 주말을 끼고 있다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6일도 Boxing Day 휴일이기에 운이 정말 좋다면 4일간의 연휴가 이론상 가능하기도 하고, 바로 올해가 그렇게 4일 연휴가 만들어지는 해 입니다.

한국의 추석이 올 한 해동안 농작물의 수확에 감사드리고 조상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는 명절인데, 사실 추수감사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Long weekend기간동안 Family re-union이 이뤄집니다. 부모님의 집 등 가족의 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 편한 제 3의 휴양지나 다른 곳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다른 휴일들의 경우 각자 자신의 가족 (부모 + 자녀)이 함께 이곳 저곳 놀러가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 만큼은 이들도 자신의 가족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을 찾아갑니다.

한국 추석의 대표 음식이 송편이라면 여기는 모두들 아시듯 커다란 칠면조를 오븐에 구운 요리를 먹습니다. 10여년 전 벤쿠버에서 유학중일때, 저도 친구들과 함께 명절 기분을 내보고자 마트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칠면조를 사서 오븐에 구워본 적이 있는데, 다시는 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죠. 칠면조는 몸통이 워낙 커서 굽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걸리기도 하고, 그냥 놔두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겉 표면이 타지 않도록 칠면조를 구우면서 발생하는 기름을 계속 칠면조에 부워가며 구워주어야 해서 음식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리며, 또 손이 많이갑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 그다지 맛있지 않은데 그 양이 어마어마 합니다. 결국 칠면조 한 번 구운 덕에 이후 거의 1달동안 4명의 유학생들의 점심 도시락은 칠면조 샌드위치였다는 슬픈 전설이...

그 음식이 무엇이 되었건,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만으로 뜻 깊은 시간일텐데,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 힘든 이민자들은 Thanksgiving에 무엇을 할까요?

저의 기억력은 좋지 않지만 IT 기술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구글포토도, 페이스북도 몇 년전 오늘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제 기억을 되살려 주네요.

캐나다로 건너온 후 첫 추수감사절에 저는 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했었네요.


첫 추수감사절 여행을 간 호텔

호숫가에 위치한 작은 호텔에서 머물며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첫 가을을 즐기러 갔었죠. 위 사진만으로는 참 조용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여행이 되었을 것 같지만, 당시의 일기를 보니 참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에 흔들리며 어려웠던 그 때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이 납니다.

낯선 언어와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본인도 어렵고 힘들지만 더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아내를 위해서라도, 또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 힐링을 하자는 생각으로 여행을 준비 했었습니다. 아직 차가 없던 시기라 차량 렌트도 해놓고, 비싸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을 갔다는 기분은 적어도 낼 만한 지역과 숙소를 찾아 예약하면서도, 지난 10개월간 단 돈 1센트도 벌어본 적이 없는 가장이 무책임하게 이런 소비를 해도 되는 것인가 고민을 했던 흔적도 보이고, 여행 중에도 스스로의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이들이 작은 실수 한 것이 도화선에 불을 당겨 쓸데없이 아이들을 혼내놓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고...

사진첩에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차있긴 하지만, 셀카봉으로 찍은 가족 사진 중 한 장에는 아빠의 감정조절 실패로 쓸데없이 잔뜩 혼나 주눅이 들은 아이들과 함께 억지 웃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 다음 해 추수감사절을 사진을 통해 돌아보니 별다른 여행은 하지않았고, 새로 이사 온 동네 탐방에 나섰었네요. 동네 주변 farm에서 열리는 Thanksgiving 페스티벌과, 동네 올드타운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을 했었네요.
Oakville 추수감사절 행사

뭐 이벤트라고 해봐야 대단한건 아니고 올드타운 시내를 한바퀴 도는 마차를 시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 정도입니다.

그래도 전년과 달리 사진 속 저와 아내의 표정에 근심이 보이지 않고, 소소한 페스티벌과 행사이지만 그 자리를 즐기고 있군요. 아이들도 이제는 학교생활과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때라, 휴일 이후 학교가기 싫다는 말을 했다는 기록도 보이지 않고, 잔뜩 혼난 후 억지웃음 지으며 찍은 사진도 없네요. 첫 추수감사절 long weekend와는 달리 신분과 일자리와 또 살 곳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라 여러모로 근심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휴 마지막 날 월요일, 밤에 아이들 동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면서 "양가 부모님들이 이런 명절 때라도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남겼군요.

이후 Thanks giving은 계속 비슷한 것 같습니다. Long weekend 성수기인지라 구지 비싼 숙소를 예약하기 보다는, 인근 Provincial Park나 Conservation Area를 찾아가 트래킹도 하고, 월말의 할로윈을 대비해 pumpkin carving을 하는 이벤트가 있으면 찾아가는 정도로요.

현지 사람들처럼 Thanksgiving이 되었다고 비행기나 기차나 차를 타고 먼 길에 나서지 않아도 되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게 가족을 향해 떠나가는 그들이 부럽기도 한 것이 이민자의 Thanksgiving day가 아닐까 합니다.

올 해 Thanks giving은 그래도 좀 특별합니다. 한국에서 장모님이 와 계시기 때문이지요.
이민을 오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특히 장모님, 장인어른께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을 떠날 때에는 정말 약속 된 것도 없고, 뚜렷한 미래도 없는 상태에서 외손주들과 딸을 데리고 떠나는 사위였고, 이후로 저희 가족끼리는 나름 만족하는 삶을 살 정도로 정착을 했지만, 이 곳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고, 또 먼 곳에서 피붙이를 보지 못하는 그리움을 갖고 살게 했기 때문이지요.

이맘때가 되면 가족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것은 비단 한국인과 캐네디언 뿐만은 아닙니다.

연어 또한 이 시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데요, 지금이 바로 연어의 회귀 시즌입니다. 그래서 이번 Thanksgiving을 연휴 기간동안 장모님을 모시고 지금 한창인 연어 회귀를 보러 나갔습니다.


어쩌다보니 한 곳도 아니고 세 곳을 보고왔네요.

토론토 인근에 가장 유명한 Salmon Run watching spot은 Port Hope와 Bowmanville 입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집에서 1시간 반 가량 떨어져있어 가까운 미시사가의 Erindale 공원으로 갔었습니다.

어떤 블로거께서 Port Hope나 Bowmanville은 약간 인공적인 냄새가 가는 관광지의 성격이라면 Erindale Park는 대자연 속의 연어를 볼 수 있다고 한 말 때문이기도 했죠.

사바나의 대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리얼 사파리 여행을 가면 에버랜드 사파리와는 달리 사자라고는 하루에 한 마리 보면 잘 보는 것입니다. Salmon run 역시도 대자연 속에서 보다보니 한시간에 한마리를 볼까말까 하더군요. 약 45분 가량을 크레딧 강 줄기따라 걸어서 오르내렸는데, 그 동안 본 연어라고는 낚시꾼이 잡은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연어가 만약 많다 하여도, 연어가 Jump를 할 만한 낙차구간이 없었습니다.
묵묵히 강물을 역류하여 오르는 연어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오랜 기간동안 고향을 찾아가느라 먹지도 못하고 지친 연어들이 폭포와 같은 낙차구간을 만나게 되었을때 실패해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인간들에게는 종족 보존의 본능과 도전정신 등을 일깨워주는 멋진 장면이기에 이를 포기할 수 없었죠.

결국 공원에서 아침 도시락으로 싸온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폭풍 검색을 하여 지난번에 이미 방문한 바 있는 Port Hope말고 새로운 장소인 Bowmanville로 갔습니다.


Bowmanville creek에 들어섰을 때 산책로의 모습과, 작지만 이쁜 계곡물은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또 이른 새벽부터 낚시를 즐기고, 어른 몸통 길이만한 연어를 각자 한 마리씩 들고 나오는 낚시꾼들이 제 아이들에게 서로 질세라 자신이 낚은 연어를 자랑질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감에 가득 차 댐이 있는 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댐이 있는 곳에 도착해보니 일단 댐의 규모가 Port Hope보다 작다보니, 댐 밑에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도 작았고 그래서 연어들을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 Erindale의 Credit river에 비해 더 많은 수의 연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Port Hope에 비하자면 그 수가 압도적으로 적었고, 연어들의 수가 적다보니 점프를 하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없었습니다.

Bowmanville에서는 비교적 연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30분 가량을 Bowmanville에서 보내다가 이미 Durham Region까지 나온 마당에 조금 더 가서 Port Hope까지 못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Port Hope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Port Hope에 도착하여 Fish Ladder가 있는 곳으로 가니 수 많은 연어, 아니 사람 떼를 만났습니다.

오늘만 생긴 특수한 일인지, 아니면 몇 년 사이에 더 유명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Fish Ladder 앞 주차장은 물론, 인근 길가에도 차로 가득 찼더군요. 그래서 먼저 가족들을 내려준 후 몇 번 주변을 빙빙돌다 차를 주차했습니다.

역시 Port Hope는 그 규모면에서 다른 곳들이 따라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동영상의 첫 장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댐에서 200-300m 떨어진 하류에 물길이 약간 잔잔한 곳에는 보시는 바와 같이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의 장면이 연출됩니다. 댐 바로 아래 웅덩이에는 물 약간 대부분 고기인 장면이 연출되고요.
물 반 고기 반

이렇게 연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적어도 1 분에 한마리 꼴로는 댐을 거슬러오르기 위해 시도하는 연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어류학자도 아니지만 오늘 하룻동안 세 개의 강을 방문하여 연어가 회귀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Port Hope에서 댐보다 조금 위 상류부터 강물을 따라 하류까지 아이와 같이 걸어가다가 도중에 지쳐 죽어있는 연어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아빠, 나 아빠랑 같이 낚시 꼭 해보고 싶은데, 연어 낚시는 안할래요."

"왜? 너 연어 스시 좋아해서 연어 낚시를 해볼까 했는데?"

"강에서 점프하다 돌에 머리 부딛쳐 죽고, 점프 잘못해서 숨 못숴서 죽고, 지쳐서 죽고... 댐에선 올라가려고 계속계속 점프해서 겨우겨오 올라가서 이제 막 알 낳으려는 연어인데, 어떻게 그걸 잡아요?"

한국을 떠나기 전 자주 봤던 뽀로로 덕분에 항상 낚시에 대한 로망이 있던 아이인데, 계속해서 부딛치고 실패해도 도전하는 연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 하더군요.

확실히 몇 해 전 처음 이 곳을 왔을때 보다는 생각이 더 여물은 것 같습니다. 그 때엔 분명,

"아빠도 낚시 할 줄 알아서 나랑 같이 연어 낚시하면 좋겠어요"

라고 했었거든요.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커나가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