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가뿐한 주말과 언짢은 시간낭비

오래간만에 상쾌하고 가뿐한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주말이야 매 7일마다 찾아오는 것인데 '상쾌하며 가뿐한' 주말은 정말 오래간만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계속 주말에 제가 해야만 하는 일들 혹은 주말에 제가 계속 공부나 연구 혹은 고민을 해봐야만 하는 일들을 안고 주말을 맞이했었는데, 이번 주에는 머릿 속을 하얗게 비워두고 쉬어도 될 만큼 뒷일을 남겨두지 않아도 되는 주말입니다.

그런데... 제 업무 자체와는 상관이 없지만, 이번 주의 목요일 금요일의 시간 낭비 자체와 시간 낭비를 하게 된 회사 정책때문에 조금 언짢은 기분이 있었습니다.

지난 달 말에 저희 팀원 중 한 명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자발적인 퇴사가 아닌 해고였죠.

회사의 기본 견습 (probation) 기간은 3개월입니다. 법적으로 probation기간동안은 회사에서는 아무런 제약없이 직원을 해고 할 수 있기에 채용 프로세스를 통과 했어도 이 probation을 통과 해야 사실상 진정한 정직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저도 이 친구의 probation 평가 리포트를 작성하기도 했지만, 첫 3달이 지났을 때 정말 애매한 상황이였습니다.
입사할 때 조건이 시니어급이였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그간 경험이나 나이로 미루어 봤을때, 그리고 일반적인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봐서는 시니어로 봐도 될 것 같은데, 조금은 새로운 분야에 대해 논할때에는 시니어의 고집과 함께 쥬니어급의 이해도를 보였습니다.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실제 퍼포먼스가 쥬니어 급이였습니다. 새로운 분야에 이해도가 쥬니어급이라고 했는데, 새로운 일은 거의 하지 못했죠. 기존 그가 익숙한 분야의 업무는 말로는 청산유수이고 모든 일이 조만간 끝날 것인 것 처럼 말을 했지만 매일매일 팀 sync up 미팅을 할 때마다 같은 업무내용에 대해 "곧 끝난다" 라는 말만 며칠간 반복이 되어 생각보다 일의 진척이 늦었었죠.
그렇다보니 처음 3개월 이후에도 Extended Probation이라 하여 추가 3달의 견습 기간을 거치게 되었는데 결국 그 기간동안 이렇다 할 진척을 보이지 못했고, 우리가 바라던 만큼의 수준을 보여주지 못해 어느날 갑자기 해고되었습니다.

원래 매니져 포함 6명인 작은 조직에서 1명이 줄어드니 이래저래 일이 몰리고 밀릴 수 밖에 없었고, 그렇다보니 제가 원래 잘 하지 않던 Ops쪽 일도 해야하여 주말에는 Ops 관련 툴들을 공부하거나 밀린 개발관련 일들을 해치우거나, 혹은 업무시간 중 바빠 미처 확인하지 못한 새로운 pilot 서비스들을 돌려보느라 이래저래 바빴습니다. 사실 그 친구가 함께했던 기간 중에도 항상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또 그가 말한 만큼의 성과가 안나와 매 스프린트마다 마지막 주차가 되면 뒤쳐진 일들을 쳐내느라 바빴는데,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티가 난다고, 그가 빠지니 그 정도가 더 심했었죠.

회사에서 주말근무를 요구하거나 반드시 각 스프린트마다 주어진 일을 마쳐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은 아닌데, 이건 약간의 사람의 성격 문제인 것 같아요. Sprint planning에서 약속한 업무들을 모든 sprint마다 다 해치우자는 것 까지는 아니지만, 연속으로 3-4 스프린트에서 목표 달성을 못하는 상황을 제가 차마 지켜보지 못하여 저 혼자라도 더 달려서 어떻게든 목표 달성을 위해 달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전까지는 피동적으로 DevOps 포지션의 지원자를 구하다가 지난달 말 부터는 외부 헤드헌터들에게도 요청을 하는 등 조금은 더 공격적으로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주 금요일, 드디어 한 명과 인터뷰가 잡혔습니다.

월요일 밤에 매니져를 통해 지원자의 이력서를 받았는데, 모국인 우크라이나에서 석사를 마쳤고 전체 경력은 10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특히나 좀처럼 구하기 힘든 DevOps 포지션의 경력이 최근 3년간 있었죠. 그래서 지금 그가 일하는 회사의 CD 수준을 파악하고자 이력서에 기재된 회사명을 검색 해 보았는데, 좀처럼 이렇다 할 정보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회사 공식 웹사이트는 찾을 수 없었고 페북 그룹이나 링크드인에 그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보이는 정도였죠.

그래도 지난 경력을 보니 우크라이나 석사 졸업 후 4-5년 정도 캘리포니아에서 웹 개발자로 일을 했고, 이후 모국으로 돌아가 다시 2-3년 정도 자바 개발자로 일을 했으며, 최근 3년간은 토론토에서 DevOps 및 자바 개발자로 일을 한 경력이 있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저희 팀에 저만 자바 개발자이다보니 저희가 쓰는 오픈소스 툴에 contribution 할 일이 있을경우 그 일들이 저에게만 몰리는 상황이라 다른 자바 개발자가 있었으면 싶었거든요.

그래서 목요일 밤,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코딩을 시작했습니다.
손코딩을 통한 간단한 알고리즘이나 369 게임, 혹은 fizz-buzz 같은 것을 구현하는 테스트를 하기 보다는 실제 코딩을 통해 그의 코딩 습관이나 실력을 조금이라도 엿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터뷰를 보기 전에 온라인 코딩시험을 치루기는 하는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저희 회사 HR은 인터뷰가 끝난 이후에야 온라인 시험 점수를 알려줬거든요. 더구나 저는 살짝 목표 지향적인지라 업무와 무관한 지식들을 시험하기 보다는 실무에서 실제로 하는 일이나 할 법한 일과 유사한 일에 대해 실무적인 능력을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준비했던 문제는 지금도 저희 CD 파이프라인에서 사용중인 저희 자체 VM 클라우드 관련된 것이였습니다. VM 클라우드에서 동시 처리능력과 파이프라인 처리 병목 정도를 파악하기 위한 간단한 모니터링 툴을 만드는 상황을 가정하였고, 각 데몬에서 리포팅한 로그들을 가져와 실제 운영상황에 대한 데이터를 필터링하는 것을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실제 문제는 매우 단순화 하여 각 VM 별로 VM 생성시간과 종료 시간의 array를 입력값으로 주었을 때, 특정 moment에 운영중인 VM의 최대 갯수가 몇 개인지를 구하는 method를 구하는 문제가 한 문제였고, 두번재 문제는 각 VM Host의 매니져 서비스에서 로그를 가져와 각 VM별로 생성 요청을 받은 시간과 생성이 종료된 시간 로그를 array 형태로 뽑아낸 뒤, 2분간 처리하는 최대 VM 생성 개수가 몇 개인지를 구하는 method를 만들라는 문제였습니다. 실제로 VM이 생성된 이후 빌드를 돌리거나 테스트를 돌리는데에도 리소스가 많이 사용되지만, 내부 클라우드에서 가장 병목이 되는 것은 Disk IO였는데, VM이 생성 될 때 마다 20GB가 넘는 VM Image 파일이 복사가 되기에 성능에 가장 크리티컬 했던 것이 Disk IO 문제였던지라 실제로 툴과 스크립트를 만들어 의사결정에 활용될 만한 metric들을 뽑아낸 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를 내는데 코딩을 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주어진 몇 시간의 기술 인터뷰 중에 가능한 짧은 시간동안 코딩 테스트를 하기 위해서였죠.
그래서 먼저 제가 뽑아온 데이터 중에 가장 데이터가 복잡하여 연산 중 작은 오류가 있으면 오답이 나올만한 부분을 골라내고 나머지 데이터는 삭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일일히 손으로 계산을 해 보았고, 제가 계산한 값과, 테스트 데이터를 기반으로 Unit Test 코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각 문제별로 시간이 얼마나 주어져야 할 지를 판단하기 위해 직접 method 구현을 했고, 문제의 배경이나 요구사항, 테스트 데이터가 어떻게 주어지고 원하는 값이 어떠한 것일지를 이해 할 만한 설명 문서도 작성을 했습니다. 물론 구두로도 그 자리에서 설명을 할 예정이였지만, 문제를 풀어나가며 생기는 질문들로 인한 지연을 최소화 하고 싶어 그렇게 준비 했죠. 그리고 코딩 테스트용 문제를 다 만든 이후에는 로그에서 timestamp를 datetime으로 변환하는 것과, 로그에서 regex로 읽어올 데이터만 뽑아내는 것 관련 행여나 시간 낭비를 할까봐 답안을 작성 할 class 내에 관련 기능은 미리 method를 작성해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오래간만에 나서는 인터뷰인지라 인터뷰에서 질문 할 내용들도 추렸습니다.

그렇게 자정이 넘어 시작한 인터뷰 준비는 좋은 동료와 함께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먼저 매니져가 인터뷰를 시작 했습니다. 매니져 인터뷰가 끝나고 제가 면접장으로 가는데, 매니져가 저를 붙잡고 짧게 말하더군요.

"아마 한 두개 정도의 질문만 하면 그가 어떤지 바로 알 수 있을꺼야"

의미심장한 말이였습니다. 몇 마디의 말로도 고수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거나, 정말 아니거나...

그런데 정말 불행하게도 그는 전자가 아닌 후자였습니다. 일단 영어가 정말 안되었습니다. 캐나다에서 일을 하면서 거의 처음으로 저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사람을 일터에서 만났습니다.

그래도 처음 두개 정도의 질문을 하면서는 그래도 10년가량의 경력도 있는데, 언어적 문제로 인해 답변을 잘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더 깊게 들어갈수록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결국 제가 준비한 코딩 문제는 차마 꺼내지도 못했고, 일반적으로 어느 회사를 가건 질문하는 기본적인 Java 관련 질문들만 하고 끝이 났습니다.

아... 아까운 내 시간... 잠도 줄여가며 인터뷰 준비를 했건만, 지금까지 봐온 인터뷰 중 가장 준비가 안된 인터뷰였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의 온라인 코딩 테스트 성적이 너무나도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매니져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아까 나에게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 그런데, 혹시 HR에서 codility test 점수 알려줬어?"

"응. 받았어."

"몇 점이야?"

"0점"

"응? 뭐라고?"

"0점"

미리 점수를 안알려주는 것이야 선입견 방지를 위해 그럴 수도 있다지만, 0점 임에도 인터뷰를 arrange하는 HR은 도대체 뭐지요?

덕분에 저와 매니져가 업무시간 중 본 손실은 총 3시간 가량입니다. 저도 인터뷰 준비를 위해 문제를 만드느라 두세 시간 정도 개인 시간을 쓰기도 했지만, 매니져 역시 그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기 위해 어젯 밤에 몇시간 동안 인터넷을 헤맸다고 하는군요.

사실 이런 문제가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수 년 전에도 다른 팀 시니어와 매니져가 HR 리크루터에게 이와 관련된 항의를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 이후에 개선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유효하더군요. 온라인 테스트 점수를 통해 미리 사람을 걸러내면 좋은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나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회사에 오면서 봤던 온라인 시험을 볼 때 웹 환경인 IDE 툴에서 개발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보니 처음 10분 정도는 '이게 뭐지?' 하다가 흘러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에 문제를 풀다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그래서 평소 실력대비 점수상으로는 20-30점 정도가 낮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0점이라도 면접을 봐야 한다니요. 0점이라면 말 그대로 주어진 문제에서 부분점수조차 획득하지 못한 것인데, 어떤 실력인지 확실히 검증이 되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확실히 수준 미달의 실력이라는 것이 검증된 사람과 면접을 본다는 것이 정말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DevOps로 옮긴 이후로는 처음 interviewer로 나섰던 자리인데다, 기존 팀과는 다르게 팀 차원에서 공동으로 준비한 인터뷰 문제들도 없는 상황에서 나간 인터뷰라 좀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는데, 정말 죽쒀서 개줬다는 말 처럼 너무나 허무하고 언짢은 기분이 들더군요.

지원자 일정에 따라 다음주 중으로도 인터뷰가 하나 더 잡힐 수도 있다고 하는데, 다음 번에는 제발 이런 케이스가 아니길 바래봅니다.

2017년 11월 11일 토요일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의 중요성

근묵자흑, 유유상종 등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말하는 사자성어들이 많고, 그 중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평생을 함께 할 사람인 배우자를 잘 만나는 것일텐데, 이민에 있어서도 좋은 사람들을 얼마나 만나게 되느냐가 아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민을 하기 전에 많이 보게 된 이야기는 "한국 사람을 가장 조심하라" 였습니다. 먼저 이민 간 사람이 새로온 이민자를 등쳐먹는다거나, 새로 온 이민자들이 그들을 도와주려던 이민 선배들을 벗겨먹는 이야기 등등 참 많이도 봤습니다.

그런데 처음 캐나다에 랜딩을 한 순간부터 제가 만났던 한국분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였습니다. 

캐나다에 랜딩을 한 순간 이민관 이후 가장 먼저 만난 분은 제 임시 숙소였던 민박집 주인 내외분인데, 이런저런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민박집에 머무는 동안 현지 사정에 어두운 저같은 새내기들을 위해 본인들이 알고있는 다양한 정보들과 노하우들을 알려주시기도 했고, 엔지니어로 일하시는 아저씨를 통해 이쪽의 직업시장이나, 구직 팁 등을 안내받기도 했고 저와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고 비슷한 또래의 다른 사람들을 소개시켜주셔서 또 다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셨죠.
또, 가족들과 함께 살 만한 아파트를 구해 민박집을 떠날 때에도 새로 구한 아파트까지 차로 왕복 해 주시며 제 짐을 다 옮겨주셨고, 쌀은 무거워 대중교통으로 오가며 구매하기 힘들다며 한인마트까지 태워주셔서 쌀 구입도 도와주시고, 또 당분간 홀애비 생활이 걱정되셨는지 큰 통에 반찬도 직접 만드셔서 따로 챙겨주셨었고요.

그 이후에도 좋은 분들과의 만남은 지속됩니다. 가족들이 캐나다로 오고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며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학교생활 적응이 가장 큰 문제가 되던 시절, 같은 학교에 아이들이 다니는 많은 학부형들을 통해 이런저런 조언과 도움들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차없는 생활을 계속 했었는데 우리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학부형 집에서 장을 보러 갈 때, 제 아내가 항상 같이 다니며 차가 없이도 한국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또 나중에보니 저희 아파트 바로 맞은편 집은 한인 노부부가 사시는 집이였는데, 그 분들을 통해서도 이런저런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나 저희 부모님이 캐나다에 잠시 머무시는 동안 그 분들이 좋은 벗이 되어주시기도 했고, 저희같은 젊은세대는 알 수 없었던 제 아버지께서 궁굼해 하시던 여러가지 정보들을 잘 알려주시기도 했고요.

뿐만아니라 짧았지만 학교를 다니던 기간 중 만난 같은과의 많은 동생들과 형님들과는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지금도 좋은 벗이 되어 멀리서라도 서로 응원해주고 격려하며 잘 살고 있고, 토론토를 벗어나 이사를 온 이후에도 아이들을 통해 이런저런 경로로 알게된 다른 한국인 이민자 가정들과 여러가지 도움을 서로 주고받으며 잘 지내고 있지요.

만약 저와 제 아내의 인복이 좋지 못하여 여러 글에서 보았던 악덕 민박집 사장님들을 만났고, 이번에 경찰에 잡힌 김OO씨 같은 사람을 통해 가족과 살 콘도를 계약하게되어 사기를 당하고, 서로 힐난하고 질투하고 헐뜯는 한인 이웃들을 만났었다면, 또 바로 이웃집에도 친절한 한인 노부부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글에서 보았던 노랜내가 진동하는 이민자 노부부를 만났다면, 친절하고 서로 배려할 줄 아는 이웃들이 아니라 서로 힐난하고 비난하고 헐뜻는 이웃들을 만났다면 지금과 같은 삶의 만족을 느끼지 못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합니다.

솔직히 저는 아직도 이민 카페들에 수두룩하게 널린 악랄한 한국인 이민자들의 스토리들이 정말 이 정도일까 싶기도 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지난 4년간 그런 분들을 만나본 적이 없으니까요.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혹은 각자의 삶의 무게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매너 혹은 말투등이 다양했고, 간혹 서로 맞지않는 성향인 경우 조금 불편하게 느끼거나 살짝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일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건 그냥 서로간 궁합이 잘 안맞는 정도이지 여러 스토리에서 보여지는 범죄자에 가까운 그런 행위들은 아니였으니까요.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또 다른 이민자들을 만날 때 더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각 인종에 대한, 혹은 출신 국가에 따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 심지어는 능력에 대한 다양한 선입견들이 있습니다. 예를들면 저는 이민 전에 인도 개발자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제 머릿 속에 그들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잘못된 선입견의 예...
개발실에서 일을 하다보면, 인도 연구소에서 간혹가다 특정 프로젝트로 인해 서너달 가량 파견을 나오거나 장기 출장을 나오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받았던 제일 큰 인상은 상당히 스마트하고 쉬지도 않고 일을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출장자인지라 인도 연구소의 근무일에 맞춰야 해서인지 몰라도 한국 휴일이 되어도 출근해서 일을 했고, 제가 토요일에 나와도 일요일에 나와도 그들은 항상 자리에 있었습니다. 또 쉬지도 않고 일을 하기도 했지만, 상당히 그 퀄리티가 높았습니다.

이것은 제가 캐나다에 오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인도인 개발자들에 대한 선입견이였는데, 지금은 이것이 상당히 왜곡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삼성에서 만났던 출장자들은 상황상 상당히 스마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인도 내에서 삼성 연구소는 상당히 괜찮은 직장이며 그 곳에 들어오기 위해 경쟁이 치열한 곳 중에 하나입니다. 뭐 좋은 직장으로 사람이 몰리는 이유가 회사 자체가 좋아서도 있지만, 이 곳의 경력을 발판으로 실리콘벨리 등으로 진출하기에 좋기에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양질의 개발자들이 모여있는 곳이고, 그러한 양질의 개발자들이 모인 조직 내에서도 나름 일을 잘하는 개발자들이 추려져 본사 프로젝트로 파견을 나오는 것이니 일을 잘하고 또 열심히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상황이였죠. 또 저는 본사 소속이고 그들은 인도 연구소에서 파견나온 상황인데다, 그들에게는 그들 뿐 아니라 그들의 팀의 일년 농사가 저희팀과 함께하고 있는 프로젝트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황이다보니 험블할 수 밖에 없기도 했고요.

캐나다에 온 이후 이러한 잘못된 선입견들은 하나씩 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1%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외국에 나온 인도 사람이면 다들 상류층이나 엘리트라는 생각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였습니다. 짧게나마 학교를 다니며 많은 인도인 친구들을 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평균적으로 그들의 생활은 일반적인 한국인 유학생들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또 그들 중 저와 가장 가깝게 지낸 그룹에 있는 친구들의 경우에는 인도에서도 학자금 융자를 통해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 여기에 올 때에도 온 친지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비자를 받아 온 것이고, 캐나다에서 생활비와 학비도 주 20시간 알바만으로는 당연히 충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밤샘 캐쉬쟙 알바를 뛰면서 졸업만을 바라보며 달리는 친구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그래도 학교 졸업에는 크게 문제가 없던 것 중 하나가, 인도인 친구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과목별 족보를 가지고 있더군요. 일부 과목들의 경우 시험 시작 30분 만에 인도인 친구들은 모두 시험을 마치고 나가기도 했었습니다.

또 인도 사람은 수학적으로 매우 뛰어나고 인도인 개발자는 매우 능력이 좋다는 것도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많이 깨졌습니다.
실제 인구 비중에 비해 개발자 중 인도인의 비중이 더 높다고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공계가 상대적으로 강한 국가들인 한국, 중국, 이란, 구 소련연방 국가들 (러시아, 우크라이나, 발틱3국 등) 출신 이민자들도 똑같습니다. 개발자 중 한국인 비율도 일반적인 인구비중 대비 높고, 구 소련 국가들 출신 개발자 비중도 일반적인 인구비중 대비 높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인도인 개발자들을 보게 되었는데, 여러 부류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다보니 기존의 제 선입견이 말 그대로 선입견임을 깨닿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정말 똑똑한 사람도 간간히 있기도 하지만, 이 사람이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을정도로 어리바리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숫자나 논리에 대한 센스는 확실이 서구유럽 출신 이민자나 북미에서 나고 자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에 비해 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저와 같은 일반적인 한국사람들이나, 구 소련연방이나 중국인들에 비해서 특별하게 우수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workaholic이라는 선입견 역시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역시 무너졌습니다. 그냥 제가 한국 직장에서 보았던 것 처럼 일을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적당히 하는 사람도 있고, 핵심적인 부분에서는 절대적 책임감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분야는 나몰라라 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다양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처음 만난 인도인 개발자나 인도 유학생들이 제 선입견들과 정확히 맞았다면, "응 걔네들은 원래 그래." 라는 생각이 오히려 더 강해져 그 이후 다른 모습의 사람들을 보게 되더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일텐데,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고 그들도 사람이기에 각 개인마다 다른 특성이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깨닿게 된 것이죠.

그러고보면 유치원 때 부터 한강의 기적 등을 이야기하면서 주구장창 들어온 이야기가 "한국인은 근면 성실하고...." 라는 말인데, 이 말도 역시 잘못된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DNA에 근면과 성실이 무조건 박혀서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마치 선민의식같이 한국인은 타고난 근면 성실맨이라는 이야기도 잘못된 이야기 인 것 같아요. 한국인 중에 정말 근면하고 성실한 사람도 있겠지만, 조금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제 생각에는 한국인 스스로를 표현하는 이런 말이 족쇄가 되어서 사회적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근면 성실해야 한다는 강요아닌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인종차별이 상대적으로 심한 한국에서 수십년간 자라고 교육받고 생활을 해 온지라 여러 인종과 민족, 국민들에 대해 많은 선입견들이 제 머릿 속에는 아직도 남아있고 알게모르게 영향을 주기도 하겠지만, 지금은 가능한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그러한 배경은 최대한 걸러내고 대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2017년 11월 5일 일요일

캐나다 일반 여염집의 할로윈 장식 위엄

안녕하세요. 할로윈은 거의 1주일 가깝게 지난 상태이지만 그래도 짧게나마 소개를 할 까 싶어서 포스팅을 합니다.

이번 주에는 회사일로 바빠서 일찍 퇴근해도 자정까지 서재의 PC 앞에 앉아있었고, 아니면 보통은 일을 하다보니 저녁 8-9시가 되어버려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가면서 한 주를 보냈네요.

하지만 아이들이 아기다리고기다리는 할로윈 날만은 미리 오후 3시쯤 퇴근을 해서 이른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함께 동네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작년 할로윈에는 그래도 날이 따뜻했던 편이라 아이들이 준비한 costume을 마음껏 뽐내고 다닐 수 있었는데, 올 할로윈에는 날이 다소 춥다보니 저희 애들 뿐 아니라 대부분의 아이들이 힘들게 준비한 costume위에 패딩점퍼 등을 걸치고 다녀서 얼굴 분장이나 악세서리를 따로 안 한 경우에는 평상복인지 구분이 안되기도 하는 안타까운 경우가 참 많았네요.

제가 이사를 온 이후로 매 해 할로윈과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매번 찾는 집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어떤 집에 이런 특정한 날 마다 찾는 집은 지인이나 고등학교 때 선생님 등 고마운 은인, 혹은 가족의 집이였는데, 이 집은 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집입니다 :)

그런데 저 말고도 참 많은 사람들이 이 사람의 집을 찾아가요.

왜나고요?

일단 긴 말 필요없고, 아래 사진과 동영상들을 보시면 이해 되실겁니다.

위에 Hell Gate 보이시나요? 놀이동산 귀신의 집이냐고요?
아니요, 그 가정집의 앞마당입니다. 앞마당에 마른 옥수수 줄기로 담장을 만들고 지옥문을 설치했군요.
T-REX도 저처럼 이 집에 구경을 왔네요.


지옥문 앞을 지키는 해골병사. 움직이는 인형이라 사진이 계속 흔들려서 나오는군요.


지옥문을 지나면 나타나는 늑대인간 아저씨

그 뒤에는 해골 마차도 있군요

흑마법사와 그를 지키는 늑대

뒤에 보이는 건물이 지금 이렇게 꾸민 집입니다.  진짜 놀이동산 아니고요.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납골당 앞에는 강한 진동이 나오는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어요.
나무다리에서 갑자기 진동이 나와 사람들이 놀라 바닥을 쳐다볼때 즈음에 이 납골당 안의
좀비가 갑자기 3-4m가량 앞으로 튀어나오며 두 번 놀래킵니다. ㅎㅎ


이건 뭔지 모르겠어요 엎드려있는데, 움직이지도 않고...

가고일도 보이네요

아저씨 칼들고 흔들면 위험해요
 
역시 이 날 장식의 최고 압권은 불쑈!!!
동영상엔 조금 허접하게 잡혔지만, 진짜 화염이 나오는 불쑈였어요.
심지어 저 앞에가면 따뜻했다는...














이 집 주인은 집을 이렇게 꾸며놓고 수백명의 사람들이 앞뒷마당에서 소리를 질러가며 즐기고 있는 와중에 핏자를 배달시켜 집 안에서 저녁을 먹더군요.

작년에는 사실 이 집 주인 포함 온 가족들이 앞뒷마당 구석 구석에 인형인 듯 숨을 죽이고 있다가 갑자기 움직이며 사람들을 놀래켰었거든요. 대표적으로 제일 마지막 사진에 가면 쓴 수도승 인형. 이 인형 10개 정도가 양쪽에 도열해 있는 것이 작년 뒷마당 출구쪽 모습이였는데, 그 중 한 인형은, 인형이 아니라 실제 사람이였죠. 올해에도 이 인형 앞에서 무언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 조심조심 걸어갔는데, 올해는 모두 다 인형이였네요.

대체 무엇을 하시는 분이 이 집의 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어마어마하게 할로윈과 크리스마스를 꾸민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간혹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때, 특정 회사에서 일종의 광고를 위해 가정집을 꾸미는 경우들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출구와 입구쪽에 브로셔가 준비되어 있는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이 눈에띄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집은 어떠한 광고나 홍보가 전혀 보이지도 않네요.

아마도 그냥 개인적인 취미? 인 것 같네요. 여하튼 이 가족 덕분에 매 년 할로윈을 재미있게 즐기고 있답니다.

2017년 11월 1일 수요일

캐나다에서의 삶의 여유란?

지난 한 달여간 저희 집에 장모님이 머물다가 가셨습니다.

당초에는 2달 조금 넘게 계실 예정이였는데, 이 곳에서 생활이 언어나 교통편 등의 문제로 제약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조금 무료하셨던 것 같더라고요. 다른 이민자 가족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아도 처음에는 아들딸도 보고, 손주들도 보고 싶어서 오실 때 항공권이 비싸다보니 몇 달 일정으로 잡고 오시지만, 막상 오고나면 자녀들이 휴가를 내 봐야 며칠 혹은 1-2주 뿐이니 남는 시간에 무어라도 하셔야 하지만 캐나다에는 지인도 없고 언어도 불편하니 몇 주가 지나면 항공권을 다시 변경해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가시는 경우가 많이 있더군요.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 일 수도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 중 한 마디가 생활과 삶의 여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었습니다. 원래도 필력이 아주 부질없지만, 오늘의 글은 그냥 머릿 속에서 터져나온 생각을 정리없이 쓰는 글이라 정말 난잡한 낙서같이 될 것 같군요.

아내의 사촌언니는 이민은 아니지만 주재원과 주재원 연장으로 지금 10년 넘게 중국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중국의 물가는 상대적으로 싸다보니 아이들 교육도 필요하면 모두 과외를 시키고 대부분의 집안일은 사람을 가사도우미를 써서 합니다. 아무래도 인건비가 비싼 캐나다에서 사는 저희는 가사도우미를 쓴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고, 제 아이들도 과외나 학원을 다니기도 하지만 예체능 쪽만 그러하고, 아이들의 한국어, 영어, 수학 등 공부와 관련된 것은 제 아내가 주로 붙잡고 시킵니다. 얼마 전에 중국 처형네 놀려갔다 오셨던 터라 캐나다에 오셔서 저희가 사는 모습을 보시니 아무래도 제 아내의 생활 측면에서 비교가 되면서 조금 속상하셨던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 아내에게 캐나다 생활에 만족은 하고 있는지, 또 이민을 온 결정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이야기를 해 보았고 다행스럽게도 만족하고 후회 없다고 하네요. 그러면서 저 역시도 캐나다에 온 것에 후회나 미련은 없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캐나다에 온 이유와 궁극적 목적은 단 하나, 제 직업이였습니다. 다시 Developer가 되고 싶었고, 또 평생 그 일을 즐기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일단 "평생 즐기면서" 부분은 앞으로 수십년간 더 살면서 지켜봐야 하겠지만 "다시 Developer가 되기"는 성공을 했으니 현재까지 진척률은 좋은 것 같고 이에 상당히 만족합니다.

그런데, 이 목표를 위해 캐나다까지 오게 된 것은 당시 저의 어정쩡한 나이에 개발 경력이 단절된 상황에서 개발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인데, 정확히 말하면 전혀 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죠. 정말 많은 것들을 내려 놓았다면 무급이나 열정페이 인턴이나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스타트업에서 지분을 일부 받는 조건으로 일을 시작 할 수도 있었고, 육아휴직 기간 중 창업을 준비하던 친구의 사업에 지분을 투자하고 들어가 개발을 다시 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한국에서 다시 한 번 Developer가 되기위해 노력하지 않은 이유는 당연히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기 싫어서였습니다. 한국에서 Developer가 된다면 페이가 얼마건 저희 부부에겐 가장 암흑기였던 시간으로 돌아가 저녁/주말/휴일 없이 일을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았고, 당시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내에서는 지금만큼의 연봉이 전혀 보장되지 못했고, 일정규모가 되거나 자체 수익 솔루션이 없는 IT 회사로 간다면 직위가 올라갈 수록 개발보다는 결국 관리나 영업으로 빠져야 할텐데, 그렇다면 평생 개발자의 목표에 반하게 되니까요.

즉 다시 한 번 당시의 생각으로 돌아간다면, "개발자가 되고싶고, 이 일을 평생 하고싶은데, 즐기면서 하기 위해 충분한 보수를 받으면서도 충분한 개인시간을 보장받고 싶다."가 저의 생각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제 목표에서 직업 관련은 이미 이루었다고 치고 삶의 영유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하는데, 과연 어떤 것이 삶의 여유인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돈? 저녁이 있는 삶? Work-Life Balance? 노후에 대한 안정감? 시간?

노후에 대한 안정은 한국 보다는 나아요. 한국도 국민연금이 잘 되어있긴 하지만, 캐나다의 연금제도가 한국 보다 살짝 조금 더 안정적인 소득을 제공하기는 합니다. 토론토 도심같이 집세가 비싼 곳에서 거주 할 만큼의 돈은 안나오지만, 시골의 한적한 동네에서 자신의 집 재산세를 내거나, 렌트비를 내면서 살기에는 살만한 수준의 돈이 나옵니다.

충분한 연봉? 이건 사실 아닌것 같습니다. 평균적인 개발자 임금 수준은 한국의 그것에 비해 확실히 높기는 합니다만, 한국 대기업 기준으로 보자면 썩 높지는 않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한국보다 물가도 더 비싸고, 최저임금도 2배 이상 높고 세율도 한국보다 많이 높으니 저도 처음에는 캐나다에서 시니어 개발자가 되면 20만불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회사 후배 중 실리콘벨리에서 일을 하고있는 후배에게 듣기로, 실리콘 벨리의 인턴 개발자 연봉이 요즘 10만불 언저리라고 했고, 저는 그 정도의 임금수준이 북미 전역에서 비슷할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캐나다에서 인턴이나 엔트리 레벨 개발자의 경우 4.5-5.5만불 정도의 임금을 받고, 시니어가 되어도 10만불도 못받는 시니어들이 적지않게 있었습니다. 세율과 물가를 무시하고 환율 차이만 계산하여 고려해도 엔트리 개발자의 임금은 사원 수준이며, 시니어의 연봉도 대리에서 과장 수준이였습니다. 과장 이상에 평가 고과가 좋은 경우라면 세전 절대금액도 캐나다 시니어 개발자 임금 이상을 수 있는데다 한국은 캐나다에 비해 소득세율도 낮고 물가도 낮으니, 소득에 대한 기회비용을 계산해보면 한국에서 더 높은 소득을 올렸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옵니다.

캐나다에 가면 한국보다 더 나은 소득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오시는 분들도 가끔 있는데, 사실 소득 면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처임금에 대해서는 한국보다 2배 이상 높지만, 최저소득과 그 언저리를 벗어난 일자리들의 임금수준을 보면 한국의 중소기업 보다는 나아도 평균 임금수준이 높고 상여금이 많이 나오는 한국의 대기업들과 비교 시 썩 높지 않거나 오히려 낮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한국에서는 다소 찬밥 신세인 전기/배관공 등 기술을 요하는 trade 일자리들의 경우 한국보다 더 높은 임금을 받습니다. 보통 지식노동자 일자리들은 시간당 임금보다는 연봉인데, 이를 시간당 임금으로 전환 해 계산해보면, 지식과 기술이 거의 비슷한 대우를 받는 사회라는 느낌을 갖습니다.

그렇다보니 지금 당장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충분한 연봉이나 이전보다 더 나은 가계수입은 아닙니다.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이라면 장점은, 이 나라에서는 제가 시장성이 있는 수준으로 계속 제 지식과 기술을 높여 나간다면 언제까지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제 능력과 실력이 뒷받침이 된다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계속 진급을 하여 임원도 되고 부사장도 되고 사장도 되면서 언제까지건 일을 할 수 있긴 하지만, 이 곳에서는 저의 몸값에 걸맞는 수준의 실력을 유지만 하면 됩니다. 즉 계속 치고 올라가야만 생존이 가능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물러도 생존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아직 수십년이 남아있긴 하지만, 제가 진정으로 은퇴를 할 시기가 되었을 때 지금까지의 누적 소득을 생각하면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과 Work-life balance는 어떨까요?
간혹 캐나다 등 복지가 발달된 국가들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들이 있는데 그 나라 국민들은 게으르다는 인식 입니다. 하지만 이미 제가 선입견이라고 말 한 것 처럼 잘못된 생각이라고 느낍니다. 요즘 교육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교육 받을 때에는 '한국인은 근면 성실하고....' 라는 말을 자주 교육받았습니다. 그런데 모든 한국인들이 근면성실할까요? 한국인의 DNA에는 근면과 성실이 기본으로 자리잡은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사회적으로 근면 성실을 미덕으로 여기며, 사회는 각 개인에게 모두 근면 성실할 것을 강요하고, 또 근면 성실의 영역이 주어진 시간을 외에 더 많은 시간을 자신의 책무 영역에 투자 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근면 성실하게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노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을 싫어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인의 삶 기준으로 보기에 캐나다 사람은 게으르고 나태하고 책임감이 낮다고 보일 수도 있습니다. 비록 제가 많은 부류의 캐나다 사람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제가 보기에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가 아무리 바빠도 사전에 계획한 개인 휴가가 있다면 뒤도 안돌아보고 휴가를 갑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떠나는 휴가에 대해 제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 시간에는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고 업무시간을 벗어난 시간이라면 비록 몸은 사무실에 자리하고 있지도 않고 업무시간 외 근무에 대해 주어진 책임은 없지만, 관련 업무에 일이 생기면 즉각 반응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 주 주말 밤에 저희 팀에서 관리하는 서비스들의 모니터링 시스템에서 이상동작이 보고되었습니다. 메일을 본 저는 회사 PC로 원격 접속해서 로그 분석을 하고 하나씩 수정 및 테스트를 하고 있는데, 30여분이 지나자 매니져 포함 6명의 팀원 중 4명이 접속을 해서 매신져를 통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1시간 정도 흘러 root cause 분석이 완료 된 시점 즈음에는 개발팀 VP도 접속해서 같이 확인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머지 2 명은 계속 오프라인 이였지만, 그들이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질책을 받거나 문제가 될 일은 없습니다. 그냥 각자 스스로 가진 책임감의 범위에 따라 행동을 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에 압력을 받습니다. 영어도 공부해야 하고, 요즘은 중국어도 필요하다고 하니 중국어 공부도 하고, 업무 성과를 인정받으려면 PT도 잘해야 하니 PT 교육도 받고,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 정책에 따라 직원 일인당 특허 하나씩 보유해야 해서 특허 연구도 하고... 회사에서 정책적으로 이에 대한 압력을 행사하는 곳도 있지만, 회사가 아니더라도 방송 등 언론을 통해서도 직장인들의 자기계발에 대해 무언의 압력을 계속 행사합니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계속 치고올라가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기에,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고 싶어도 머물 수 없으니 반 강제적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에대해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스스로 더 높은 자리로 발전을 원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은 것들을 찾아 공부하고 익힙니다. 그냥 그 자리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경우에는 그냥 현재를 즐기기도 합니다. 그러니 자신이 알고 지내는 캐네디언이 누구냐에 따라 보이는 시각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제가 회사에서 보는 대다수의 동료들은 상당히 부지런하며, 자기계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합니다. 제 매니져만 해도 1달간 휴가를 내고 캐러비안에 놀러간 기간 동안 당시로서는 저희 팀에서 새로 도입하는 툴인 chef와 kitchen, 그리고 AWS 서비스 세가지에 대해 정말 많은 공부를 하고 왔더군요. 사실 이제는 더 이상 개발자가 아닌 매니져인지라 그렇게 깊은 수준으로 기술 공부를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죠. ㅠㅠ

지금도 저는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일을 하고는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7시까지 일을 하면서 거의 12시간 일을 하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퇴근은 3-4시에 하지만 퇴근 후 일을 하기도 합니다. 오랜기간 현업을 떠난 상황이라 그 시간공백을 메꾸고 싶다는 욕심도 있거니와 제 나름의 목표하는 지향점에 도달하고 싶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3-4시에 퇴근을 한 다 해도 사실 그 때부터 완벽한 자유시간은 아닙니다. 그 때 부터 또 다른 환경에서 업무와 공부가 시작되지요.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모든 시간이 물리적으로 강제된 환경이 아니고, 시간에 대해 제 자율로 조절을 할 수 있기에 제 스스로만 조절을 잘 한다면 100% 만족 할 만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아직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수준으로 work-life balance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민 후의 생활이 정말 꿀같고 달콤하고 풍요롭다고 생각하고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을 구하고 생활비 대비 소득으로 보면 매우 풍족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본인인의 위치에 따라서는 캐나다에서 소득이 덜 풍족할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직원에게 요구하는 수준이나 근무시간 등은 정말 꿀같고 달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연차에 따른 대우를 받는 사회는 아니기에 더 인정받고 더 올라가고 싶다면 그 달콤함을 완전히 즐길 수는 없고, 어느 정도는 스스로에게 채찍 질을 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지금 위치와 자리와 대우에 만족하고 그대로 머무르고 싶다면 도태되지 않는 수준으로만 노력하면 되기에 여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좋은 대우를 받으면서도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역시나 private sector가 아닌 public sector에 들어가서 일을 해야 되겠죠. :)

2017년 10월 9일 월요일

이민자의 Thanksgiving Day

안녕하세요.

한국은 오늘까지 특별휴일 - 추석 - 개천절 - 한글날로 이어지는 10일간의 연휴로 알고있는데, 캐나다도 오늘까지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이였습니다.

캐나다에서는 이런 연휴 기간을 보통 long weekend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정말 특정한 날이 중요한 경우, 예를들어서 캐나다의 개천절 쯤 되는 7월 1일 Canada Day나 12월 25일 Christmas, 1월 1일 New Year Day 같은 날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휴일이 "xx월 n번째 월요일"와 같이 지정이 되어있어 항상 연휴가 되기에, 일반적인 주말보다 더 길어서 long weekend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것이 얼마나 긴 것인가를 보자면, 그냥 주말보다 조금 깁니다. 한국의 설이나 추석과 같이 3일씩 되는 휴일이 없이 모두 단 하루만 휴일이기에 토일월 3일 휴일이 되는 것이지요.

Christmas가 주말을 끼고 있다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인 26일도 Boxing Day 휴일이기에 운이 정말 좋다면 4일간의 연휴가 이론상 가능하기도 하고, 바로 올해가 그렇게 4일 연휴가 만들어지는 해 입니다.

한국의 추석이 올 한 해동안 농작물의 수확에 감사드리고 조상과 가족의 의미를 돌아보는 명절인데, 사실 추수감사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Long weekend기간동안 Family re-union이 이뤄집니다. 부모님의 집 등 가족의 집에서 모이기도 하고,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 편한 제 3의 휴양지나 다른 곳에서 모이기도 합니다. 다른 휴일들의 경우 각자 자신의 가족 (부모 + 자녀)이 함께 이곳 저곳 놀러가거나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 만큼은 이들도 자신의 가족이 아닌 좀 더 넓은 의미의 가족을 찾아갑니다.

한국 추석의 대표 음식이 송편이라면 여기는 모두들 아시듯 커다란 칠면조를 오븐에 구운 요리를 먹습니다. 10여년 전 벤쿠버에서 유학중일때, 저도 친구들과 함께 명절 기분을 내보고자 마트에서 가장 작은 크기의 칠면조를 사서 오븐에 구워본 적이 있는데, 다시는 하지 말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죠. 칠면조는 몸통이 워낙 커서 굽는데 시간이 매우 오래걸리기도 하고, 그냥 놔두면 되는 것이 아니라 겉 표면이 타지 않도록 칠면조를 구우면서 발생하는 기름을 계속 칠면조에 부워가며 구워주어야 해서 음식 준비를 하는데 시간이 상당히 오래걸리며, 또 손이 많이갑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인 그다지 맛있지 않은데 그 양이 어마어마 합니다. 결국 칠면조 한 번 구운 덕에 이후 거의 1달동안 4명의 유학생들의 점심 도시락은 칠면조 샌드위치였다는 슬픈 전설이...

그 음식이 무엇이 되었건,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것 자체만으로 뜻 깊은 시간일텐데, 가족들이 함께 모이기 힘든 이민자들은 Thanksgiving에 무엇을 할까요?

저의 기억력은 좋지 않지만 IT 기술들은 저에게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구글포토도, 페이스북도 몇 년전 오늘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제 기억을 되살려 주네요.

캐나다로 건너온 후 첫 추수감사절에 저는 제 가족과 함께 여행을 했었네요.


첫 추수감사절 여행을 간 호텔

호숫가에 위치한 작은 호텔에서 머물며 캐나다에서 맞이하는 첫 가을을 즐기러 갔었죠. 위 사진만으로는 참 조용하고 행복하고 여유로운 여행이 되었을 것 같지만, 당시의 일기를 보니 참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에 흔들리며 어려웠던 그 때의 감정이 조금이나마 다시 생각이 납니다.

낯선 언어와 환경에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본인도 어렵고 힘들지만 더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아내를 위해서라도, 또 원래 여행을 좋아하는 저 자신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를 위해 힐링을 하자는 생각으로 여행을 준비 했었습니다. 아직 차가 없던 시기라 차량 렌트도 해놓고, 비싸지 않지만 그래도 여행을 갔다는 기분은 적어도 낼 만한 지역과 숙소를 찾아 예약하면서도, 지난 10개월간 단 돈 1센트도 벌어본 적이 없는 가장이 무책임하게 이런 소비를 해도 되는 것인가 고민을 했던 흔적도 보이고, 여행 중에도 스스로의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아이들이 작은 실수 한 것이 도화선에 불을 당겨 쓸데없이 아이들을 혼내놓고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기도 했고...

사진첩에는 아름다운 사진들이 가득차있긴 하지만, 셀카봉으로 찍은 가족 사진 중 한 장에는 아빠의 감정조절 실패로 쓸데없이 잔뜩 혼나 주눅이 들은 아이들과 함께 억지 웃음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 다음 해 추수감사절을 사진을 통해 돌아보니 별다른 여행은 하지않았고, 새로 이사 온 동네 탐방에 나섰었네요. 동네 주변 farm에서 열리는 Thanksgiving 페스티벌과, 동네 올드타운에서 열린 이벤트에 참석을 했었네요.
Oakville 추수감사절 행사

뭐 이벤트라고 해봐야 대단한건 아니고 올드타운 시내를 한바퀴 도는 마차를 시에서 무료로 제공해주는 것 정도입니다.

그래도 전년과 달리 사진 속 저와 아내의 표정에 근심이 보이지 않고, 소소한 페스티벌과 행사이지만 그 자리를 즐기고 있군요. 아이들도 이제는 학교생활과 언어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때라, 휴일 이후 학교가기 싫다는 말을 했다는 기록도 보이지 않고, 잔뜩 혼난 후 억지웃음 지으며 찍은 사진도 없네요. 첫 추수감사절 long weekend와는 달리 신분과 일자리와 또 살 곳의 문제가 해결된 상황이라 여러모로 근심이 많이 사라진 상태였기에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연휴 마지막 날 월요일, 밤에 아이들 동영상을 만들고 편집하면서 "양가 부모님들이 이런 명절 때라도 아이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남겼군요.

이후 Thanks giving은 계속 비슷한 것 같습니다. Long weekend 성수기인지라 구지 비싼 숙소를 예약하기 보다는, 인근 Provincial Park나 Conservation Area를 찾아가 트래킹도 하고, 월말의 할로윈을 대비해 pumpkin carving을 하는 이벤트가 있으면 찾아가는 정도로요.

현지 사람들처럼 Thanksgiving이 되었다고 비행기나 기차나 차를 타고 먼 길에 나서지 않아도 되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렇게 가족을 향해 떠나가는 그들이 부럽기도 한 것이 이민자의 Thanksgiving day가 아닐까 합니다.

올 해 Thanks giving은 그래도 좀 특별합니다. 한국에서 장모님이 와 계시기 때문이지요.
이민을 오면서 다른 가족들에게, 특히 장모님, 장인어른께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선 한국을 떠날 때에는 정말 약속 된 것도 없고, 뚜렷한 미래도 없는 상태에서 외손주들과 딸을 데리고 떠나는 사위였고, 이후로 저희 가족끼리는 나름 만족하는 삶을 살 정도로 정착을 했지만, 이 곳에서 어떻게 살고있는지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드리지 못했고, 또 먼 곳에서 피붙이를 보지 못하는 그리움을 갖고 살게 했기 때문이지요.

이맘때가 되면 가족을 향해 달려가고 싶은 것은 비단 한국인과 캐네디언 뿐만은 아닙니다.

연어 또한 이 시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데요, 지금이 바로 연어의 회귀 시즌입니다. 그래서 이번 Thanksgiving을 연휴 기간동안 장모님을 모시고 지금 한창인 연어 회귀를 보러 나갔습니다.


어쩌다보니 한 곳도 아니고 세 곳을 보고왔네요.

토론토 인근에 가장 유명한 Salmon Run watching spot은 Port Hope와 Bowmanville 입니다. 하지만 두 곳 모두 집에서 1시간 반 가량 떨어져있어 가까운 미시사가의 Erindale 공원으로 갔었습니다.

어떤 블로거께서 Port Hope나 Bowmanville은 약간 인공적인 냄새가 가는 관광지의 성격이라면 Erindale Park는 대자연 속의 연어를 볼 수 있다고 한 말 때문이기도 했죠.

사바나의 대자연 속에서 벌어지는 리얼 사파리 여행을 가면 에버랜드 사파리와는 달리 사자라고는 하루에 한 마리 보면 잘 보는 것입니다. Salmon run 역시도 대자연 속에서 보다보니 한시간에 한마리를 볼까말까 하더군요. 약 45분 가량을 크레딧 강 줄기따라 걸어서 오르내렸는데, 그 동안 본 연어라고는 낚시꾼이 잡은 한 마리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연어가 만약 많다 하여도, 연어가 Jump를 할 만한 낙차구간이 없었습니다.
묵묵히 강물을 역류하여 오르는 연어의 모습도 아름답지만, 오랜 기간동안 고향을 찾아가느라 먹지도 못하고 지친 연어들이 폭포와 같은 낙차구간을 만나게 되었을때 실패해도 계속해서 시도하는 것을 지켜보는 인간들에게는 종족 보존의 본능과 도전정신 등을 일깨워주는 멋진 장면이기에 이를 포기할 수 없었죠.

결국 공원에서 아침 도시락으로 싸온 김밥과 떡볶이를 먹으며, 폭풍 검색을 하여 지난번에 이미 방문한 바 있는 Port Hope말고 새로운 장소인 Bowmanville로 갔습니다.


Bowmanville creek에 들어섰을 때 산책로의 모습과, 작지만 이쁜 계곡물은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또 이른 새벽부터 낚시를 즐기고, 어른 몸통 길이만한 연어를 각자 한 마리씩 들고 나오는 낚시꾼들이 제 아이들에게 서로 질세라 자신이 낚은 연어를 자랑질하는 모습을 보며 기대감에 가득 차 댐이 있는 장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댐이 있는 곳에 도착해보니 일단 댐의 규모가 Port Hope보다 작다보니, 댐 밑에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도 작았고 그래서 연어들을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었습니다. 또 Erindale의 Credit river에 비해 더 많은 수의 연어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Port Hope에 비하자면 그 수가 압도적으로 적었고, 연어들의 수가 적다보니 점프를 하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없었습니다.

Bowmanville에서는 비교적 연어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30분 가량을 Bowmanville에서 보내다가 이미 Durham Region까지 나온 마당에 조금 더 가서 Port Hope까지 못 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Port Hope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Port Hope에 도착하여 Fish Ladder가 있는 곳으로 가니 수 많은 연어, 아니 사람 떼를 만났습니다.

오늘만 생긴 특수한 일인지, 아니면 몇 년 사이에 더 유명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Fish Ladder 앞 주차장은 물론, 인근 길가에도 차로 가득 찼더군요. 그래서 먼저 가족들을 내려준 후 몇 번 주변을 빙빙돌다 차를 주차했습니다.

역시 Port Hope는 그 규모면에서 다른 곳들이 따라오지 못 할 것 같습니다.

동영상의 첫 장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댐에서 200-300m 떨어진 하류에 물길이 약간 잔잔한 곳에는 보시는 바와 같이 말 그대로 물 반 고기 반의 장면이 연출됩니다. 댐 바로 아래 웅덩이에는 물 약간 대부분 고기인 장면이 연출되고요.
물 반 고기 반

이렇게 연어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보니 적어도 1 분에 한마리 꼴로는 댐을 거슬러오르기 위해 시도하는 연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어류학자도 아니지만 오늘 하룻동안 세 개의 강을 방문하여 연어가 회귀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Port Hope에서 댐보다 조금 위 상류부터 강물을 따라 하류까지 아이와 같이 걸어가다가 도중에 지쳐 죽어있는 연어의 모습을 바라보며 제 아이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아빠, 나 아빠랑 같이 낚시 꼭 해보고 싶은데, 연어 낚시는 안할래요."

"왜? 너 연어 스시 좋아해서 연어 낚시를 해볼까 했는데?"

"강에서 점프하다 돌에 머리 부딛쳐 죽고, 점프 잘못해서 숨 못숴서 죽고, 지쳐서 죽고... 댐에선 올라가려고 계속계속 점프해서 겨우겨오 올라가서 이제 막 알 낳으려는 연어인데, 어떻게 그걸 잡아요?"

한국을 떠나기 전 자주 봤던 뽀로로 덕분에 항상 낚시에 대한 로망이 있던 아이인데, 계속해서 부딛치고 실패해도 도전하는 연어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다 하더군요.

확실히 몇 해 전 처음 이 곳을 왔을때 보다는 생각이 더 여물은 것 같습니다. 그 때엔 분명,

"아빠도 낚시 할 줄 알아서 나랑 같이 연어 낚시하면 좋겠어요"

라고 했었거든요. 모르는 사이 아이들은 점점 커나가는 것 같습니다.



2017년 10월 6일 금요일

이민병 환자들을 위한 싸구려 조언

마음의 병 역시 병인지라 육신에 이상이 생긴 것 만큼이나 힘들고 불편하고 아프죠.

대표적인 병으로는 황진이를 사랑하는 바람에 마음에 병이들어 같은 동네 총각을 죽게 했다던 '상사병'이 있을 것이고, 미국 정신의학회에 등록되기까지 한 '화병'도 있을 것이고, 현대인들이 많이 겪는다는 '우을증'과 같은 정신질환도 있고, 또 '이민병'이 있을 것입니다.

이민병이나 상사병이나 무언가 이루고 싶은 욕망과 목표가 있으나 본인의 의지와 뜻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기에 생기는 병이라는 점과 그 병의 완벽한 치료는 결국 그 목표/욕망을 이룰 때 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마음의 변화, 혹은 포기로 인해서도 치유가 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고요.

이전에도 밝힌 바 있듯, 저 역시도 마음의 병인 '이민병'을 한동안 가슴에 품고 살았던 시기가 있습니다.

처음 이 병을 앓았을 당시, 이 병의 root cause는 work-life balance를 가진 삶을 꿈구는 것이였고, , 나중에는 career에 대한 고민이였습니다.

처음 이 병을 앓았던 시기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 첫 포스팅에도 소개가 되어있습니다. 그 때에는 직군 전환을 통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단은 견딜만한 수준의 work-life balance를 이루며 마음의 상처가 어느정도 보듬어졌고, 또 아이들의 탄생으로 인해 이민을 노릴만한 상황이 되지 못하게 되자 포기로 이어져 치료가 되었습니다.

두번째 이민병을 앓게 되었을 때에는, 직군을 변경하고 견딜만한 work-life balance를 갖었을 때 입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주말이나 휴일 근무가 눈에띄게 줄었으며, 밤늦게 퇴근하는 일은 많았지만 새벽에 퇴근하는 일은 적어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제 일과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문제였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같이 일하는 팀원들과의 관계가 좋았기에 일은 싫어도 사무실이 싫지는 않았으며, 잦은 해외출장이 때로는 피곤하기는 했지만 일종의 리프레쉬 역할을 해주기도 했으며, 제 R&R 중 하나가 해외 지법인 상대 교육 및 고객 상대 PT인데, 이 역할은 제 적성에 맞는 영역이다보니 제 병의 수준이 중증은 아니였습니다. 또, 처음 병을 치료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갓난아이 둘이 있다보니 한국에서 다진 기반을 모두 포기하고 이국땅으로 향하는 것이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죠. 그렇다보니 이민에 지속적인 관심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액션을 취할 만한 단계는 아니였습니다.

반면 나중에 이민병을 앓게 되었을 때에는 말 그대로 벼랑 끝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일에대한 만족도가 낮고, 저의 미래가 불투명하게만 느껴져 또 다른 직군으로 도전을 했지만 오히려 장고 끝에 악수가 되어버렸고, 일에대한 만족도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도, 또 Work-Life Balance도 이전보다 더 안좋은 상황이 되어버렸으며, 또 다른 커리어로의 도전과 같은 운신의 폭 역시 더욱 줄어들은 상황이였죠. 결국 이러한 상황은 '이민병'을 재발시켰으며, 더 이상의 선택이 없다고 느꼈기에 이민을 통한 치유를 그 대처 방안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여러분께서 지금 이민병을 앓고 계시고 이런저런 이민 방안을 찾아봐도 마땅한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왜 발병하게 되었는지 그 root cause를 먼저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인지 아니면 현실에 대한 불만족인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불안하고 무엇이 만족스럽지 못한지, 또 현재 상황에서 이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그 불만족과 불안을 해소 할 방법이 있는지를 생각하시다 보면, 이민보다 더 안정적이고 나은 다른 치유 방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가족이 이민병을 앓고 계시다면, 그 분에게 이런 식의 조언은 하지 않으시는게 나을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병이 들었을 때에는 그 마음을 보듬아주는 것이 이성적/논리적으로 해결하는 것 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보통 이성적/논리적 접근은 어느정도 상처가 아물어야 가능하거든요.

이민병의 root cause를 찾아보고 그에 걸맞는 치유방법이 아무리 생각해도 이민 외에는 답이 없다면, 이민에 대해 찾아보고 공부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어느 나라로 내가 이민을 갈 수 있을지, 그 나라에는 어떤 이민 프로세스가 있으며 나에게 가능한 이민 프로그램은 무었일지, 그 프로그램에 도전 시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될지, 성공 가능성을 계산할 때 변수가 될 것들은 무엇인지와 그 변수는 나 자신이 스스로 컨트롤 가능한 변수인지 외부 변수인지 등등이 되겠죠.

가장 안좋은 공부 방법은 계속해서 이주공사/유학원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처음 이민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할 때에는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할지가 막막하니, 이주공사, 유학원이나, 이민 유학 박람회에 가셔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어보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이해가 된 이후부터는 가장 정확하고 신뢰성이 있는 정보를 공부하시는 것이 좋은데, 바로 목표하는 국가의 이민성 홈페이지입니다. 이민성 홈페이지에는 이민 프로그램에 대한 소개와 요구조건, 선발 과정, 선발 기준 등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어차피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 가서 밥벌어먹고 살 생각을 하신 마당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생활의 일부가 될 영어 읽기에 익숙해져야 하기에, 다소 부담스럽더라도 꼭 이민 정보의 오리지널 소스인 이민성 홈페이지를 잘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만약 스스로 정확한 정보와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잘못된 업체를 만나게 되는 경우, 돌이키기 어려운 잘못된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민 자체에 대한 정보와 기준이 확립이 되었다면, 실제 이민자의 생활, 취업 가능성 등등, 이민성 홈페이지에는 잘 나오지 않는 정보들을 익히시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이민 카페나 블로그, 관련기사, 혹은 모임등을 통해 간접 경험을 할 수 밖에 없겠죠. 만약 해외 생활에 경험이 전혀 없다면 시간을 내어 한번 쯤 목표하는 나라에 직접 탐방을 나가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영주권 획득 방법 자체도 중요하지만 결국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기에 구직자로서 그 나라에서 나의 경쟁력이 무엇일지도 연구를 충분히 해야 하겠고요.


저도 1차 발병 시 당시 목표하던 이민 대상국이였던 호주에 직접 방문을 했었습니다. 저는 당시에 이민이 아닌 다른 치유법을 선택했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한 것은 저의 직군전환과 아이들의 탄생이였지만, 그 이전에 직군전환을 했던 이유는 호주 방문 시 체감한 물가와 함께 다양한 간접경험들을 통해 느낀 리스크의 정도가 직군전환에 따른 리스크보다 훨씬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저의 선택은 제 커리어를 꼬이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았고, 1/2차 치료 모두 악수에 악수를 거듭하는 꼴이 되었지만, 반대로 이민병의 치유 방법으로 이민 실행을 실천하시는 분들 중에 '이민' 자체가 악수 중에 악수인 경우가 되는 케이스도 분명 있습니다. 제 예전 포스팅에도 있지만 이민을 염두하고 캐나다에 오는 한국인은 한 해에 수만명 이지만 실제로 영주권을 받는 한국인은 한 해 평균 많아야 4000명 수준입니다. 4000명 중에는 당연히 캐나다에 오지 않고 아웃랜드로 영주권을 받는 사람들도 포함이 된 수치이고요.

만약 본인이 지금 이민병으로 인해 이민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 단계가 되셨다면, 제 블로그 포함 각종 이민관련 카페와 모임, 블로그, 웹사이트 등에 접근을 자제하실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미 여러분은 이민 프로세스에 대한 숙지가 되어있으며, 본인이 도전하고자 하는 이민 프로그램에 무엇이 부족하고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 알고계신 상태일 것입니다. 만약 내가 목표하는 이민 프로그램(들)에 대해 아직 잘 모르겠고 스스로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불명확하여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 지 조차 모르는 상태라면, 아직 이민을 위한 본격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민 프로세스와 프로그램은 어느정도 수준이 되면 더 이상의 새로운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스스로 접근을 자제하게 되지만, 간접 경험 채널인 모임, 카페, 블로그 등은 발걸음을 끊기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십개가 넘는 새로운 글들이 올라오고, 또 필력이 좋은 분들이 올리시는 글이라도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게 되죠. 또,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간접 경험이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그 목마름을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기도 하고, 간접 경험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려해도 각 필자의 주관적 생각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들을 보여주다보니 항상 정보가 부족하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시면 매일 올라오는 수십, 수백개의 글 중에서 완전한 새로운 내용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똑같거나 비슷한 경험을 다른 분들이 새로 공유를 해주고 있을 뿐이지요.

지금 단계는 더 이상 의사결정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정보를 긁어모을 단계가 아닙니다. 이미 결심을 했고 액션을 취하기 시작하는 단계이기에, 본인의 액션에 더욱 주목을 하셔야 합니다. 매일같이 몇 시간씩 웹 검색을 하기 보다는, 그 몇 시간을 내가 채워나가야 할 것을 채우는데에 조금 더 집중하시는 것이 더 도움이 되실겁니다. 아마도 이 시기에 이민 신청을 위해서건, 학교 입학을 위해서건, 혹은 이주 후 현지 정착을 위해서건 가장 공통적인 준비요소가 어학실력일텐데, 하루에 수십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씩 웹 검색을 하는 것 보다는 그 시간에 어학 점수를 쌓는데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시는 것이 더욱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사람마다 각자 다른 생각과 의견이 넘치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는 것 보다 공부에 집중을 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스스로의 정신 안정에도 더 도움이 될 것이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 생각하기에 장기간 이민병 중증 증상에 시달리면서 아직까지 이민 외에 뚜렷한 대안도 찾지 못했고, 그렇다고 이민 실천을 위한 명확한 action item도 없거나 있어도 실천을 제대로 못하고 계시면서 줄기차게 웹 검색과 이/유 박람회, 이주공사 세미나 참석을 하고 계시다면 힘드시더라도 당분간 이민과 관련된 정보채널의 접근을 차단하시고 현재 생활에 집중을 해보시면서 이민병이 발생한 root cause가 무엇인지 먼저 찾아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그렇게 하시면 새로운 대안이 나오거나, 이민을 위한 진짜 action item을 수립할 수 있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대안을 찾으시건 이민으로 결정이 나셨건 치유 방법이 보이신다면, action item을 수립하여 바로 행동에 옮기시는 것이 마음의 병을 다스리시는데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군대에서 배운 몇 안되는 지혜 중 하나인데, 몸이 바쁘면 마음은 편안해집니다.

이상 이민병 병력을 가져본 바 있는 전 환자의 값 싼 1¢ 조언이였습니다.

2017년 9월 27일 수요일

선배/후배와의 대화 - 일체유심조2

어젯 밤에 우연치 않게 페이스 북에 보인 글이 있어 댓글을 남기다가 삼성에서 일할 때 알게된 유관부서 선배와 페이스북 챗을 통해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근황도 확인하고 덕담도 주고받던 중에, 오래 전에 그 선배가 저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 그 당시의 이야기를 제가 꺼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갤럭시 노트 2 or 3, 혹은 갤럭시 S3 or 4 프로젝트를 하던 시기였을 것입니다. 제품이 성공적으로 런칭했고, 순조롭게 초도 판매가 시작된 이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인력들이 모여 같이 회식을 하던 날이였죠.

프로젝트 기간 중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계획된 모든 것을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상당부분 진척이 있었고, 또 출시 후 반응도 좋았으며, 약간의 지연은 있었지만 hard deadline 이내에 완료되었기에 모두들 기분 좋은 상태였고, 특히나 HW/SW 개발 담당 수석님들은 다음 임원 인사 때 상무 승진에 대한 기대로 가득차 있었죠.

어느정도 술자리가 무르익자 몇몇 개발팀 사람들은 수석님들께

"이제 곧 상무님 되시는거 아닌가요? '상무보' 라고 불러야 되는거 아닐까 모르겠는데요"

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기도 했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술자리가 진행되고 저도, 또 그 선배도 상당한 량의 술을 마신 상태에서 갑자기 선배가 저에게 이런 말을 꺼냈습니다.

"너희부서 사람들 다 좋아. 너 그것도 복이다. 다들 스마트한 것 같고. 업무 분야때문인지 몰라도 젊은 것 같다. 실제 나이도 다른 팀들보다 젊기도 하지만, 생각도 젊고, 무엇보다 부서에 공공의 적이 되는 꼰대가 없자나."

원래 젠틀한 성격에 후배에게 말 놓는 사람이 아닌데, 그 날 따라 술이 취해서인지 아니면 원래 유관부서라도 직급이 낮으면 말부터 놓고보는 개발팀 수석님이 옆자리에 앉아 반말 바이러스를 옮긴 것인지 호칭도 '대리님'에서 '너'로 바뀌었고, 말도 존댓말에서 반말로 바뀌었습니다.

"생긴지 몇 년 안된 팀이자나요. 업무 R&R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생긴 팀이라 일단 존재 자체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다같이 뛰다보니 그럴지도 모르죠."

"뭔소리야. 요즘 시기엔 너희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HW만 가지고 경쟁이 되나? 그리고, 할 일이 명확하지도 않은 팀을 회사에서 몇 년째 가만히 내버려 둘 것 같아? 삼성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야. 필요하니까 조직이 계속 유지되는거지."

"뭐, 저도 그렇게 믿고싶은데, 매년 임원인사/조직개편 시즌되면 팀이 남느냐 없어지느냐 이야기 돌고, 또 매 년 팀 인원 반토막 나서 다른팀으로 이동되고 그러자나요."

"야 봐봐. 그게 너희 팀 없애려고 이동시킨게 아니자나. 너네가 빌드업 한 프로젝트가 구찌 커지니까 새로 전담 팀 꾸리던지, 더 큰 팀으로 옮기느라 그런거지. 너희가 잘 하니까 그렇게 분할되고 자꾸 그러는거자나."

"그래도 뭐랄까... 쓸데없는 일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좀 저희 역할이 오버헤드 같기도 하고 그렇죠. 진짜 존재의 이유를 찾아야 하는데 말이죠."

"진짜 쓸데없는 일이거나 오버헤드면 사람 반토막 나고나서 다시 1년 지나면 채워지고 그럴 수 있겠냐? 인사팀이 호구도 아니고."

"솔직히 각 부서의 업무들을 모아놓고 저희 부서의 업무들과 다른 부서의 업무들 중 교집합을 빼고나면 저희 부서에는 남는게 아무것도 없어요. 고유 영역이 없죠."

"고유영역? 야 그런게 어디있어. 개발/생산 같은 직접부서 빼면 원래 그런거 없어. 나라고 있을 것 같아? 상품기획? 따지고보면 우리가 뭐 밑바닥부터 새로 만들어 내는게 어디있어? 다 디자인, 개발, 연구소, 해협에서 들고온 것들 하나로 엮는거지. 그렇게 따지면  우리라고 고유영역이 있냐? 넌 그게 문제야. 너 책임감도 있고, 그래서 같이 일하면 편한하긴 한데, 넌 주인의식이 없어. 가끔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진취적이지 않아."

선배가 이 말을 했던 순간은 상당히 기분이 나빴습니다. 책임감이 있는데 주인의식은 없다? 명확하게 우리가 주인인 업무가 없는데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안그래도 부서 이동 후 업무 성격도 잘 맞지않아 지속적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있던 상황인데다, 언젠가부터 갖고 있었던 회사 생활의 원칙, 'x 팔리지 않게 일하자' 를 나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니 영 거북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이라는 말은 정확히 정곡을 찔렀습니다. 비록 이 말을 했던 선배는 지금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고, 저도 선배와의 대화 내용은 제 기억에 의거해 재구성을 한 것이지만 그 말만은 취중에 들었어도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이 납니다.

저는 말 그대로 창피한 일이 터지지 않는 수준에서만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가능한 현재있는 자원들 중에 하나라도 사고가 터지지 않도록만 관리를 했었고, 새로운 일에는 상당히 보수적으로만 접근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부서 내에서도 업무 영역은 크게 두 가지 였는데, 하나는 신규 서비스 기획/추진/개발, 다른 하나는 서비스의 유지/보수/관리/배포 였습니다. 원래는 모든 팀원들이 이 두 가지 업무 모두를 중첩해서 일하던 구조였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는 팀 내에서 업무영역을 기획담당, 매니징 담당으로 확실히 나누게 되었는데, 저는 그 때 매니징 업무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팀내에 새로운 프로젝트나 업무가 진행 될 때면 몇 번이고 업무 분할을 다시 했지만 저는 요지부동으로 기존 업무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고요.
매니징 그룹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유는 대외적으로는 저만의 전문영역에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는 제가 주인이 되는 업무를 만들고 싶지 않았고,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과 정신을 업무에 투자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저 매일매일 루틴한 업무를 해가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계속 관리/모니터링하고, 만약에 사고가 터지만 관련 직접부서에 추궁을 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기 보다는 지금 있는 것들이나 제대로 내보내자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당시 제가 얼마나 수동적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저는 주로 플래그쉽 단말쪽에서 일했고, 다른 제품군의 경우 후배들이 담당을 했었습니다. 하루는 특화폰을 담당한 후배가 기존 서비스를 조금 변경하여 그 모델의 특성에 맞게 바꾸고자 유관부서 요청 공문을 보내기 위해 저를 찾았습니다.

제품 컨셉에 맞는 적절한 제안이였죠. 하지만 당시에 플래그쉽 모델을 타깃으로 메이져 버젼 업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던 상황이였기에 저는 본 변경건으로 인해 제 모델의 일정에 영향이 갈 것을 먼저 우려했었고, 후배의 아이디어에 테클부터 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진짜로 우려하는 제 '모델 일정에 영향'을 제외한 다른 risk들을 하나씩 이야기 하고 후배와 제 우려들과 후배의 제안이 합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하나씩 따지다가 후배가 저에게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대리님이 그걸 걱정해요? 그건 그 쪽 담당부서에서 고민하고 답변을 줘야하는 것이지 대리님이 왜 그걸 먼저 대신 걱정해주고, 그 걱정 때문에 먼저 우리의 요구사항을 스스로 제한하나요?"

갑자기 대낮에 벌거벗은 채로 강남대로에 서 있는 것 마냥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아... 아니 그런건 아니고, 객관적으로 추진 가능한지 가능성을 미리 알아야 우리도 우리 컨택 포인트들에 이야기 할 때 톤을 정할 수 있으니까 그런거지..."

"거기서 힘들겠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안할 것도 아니자나요. 어짜피 우리는 어떻게든 요청하고 안되면 이슈 레이즈하고, 보고하고 해서 일이 되도록 할꺼자나요. 그게 우리 할 일 아니에요?"

이번에는 원투 펀치를 맞은 것 처럼 어지러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리의 할 일과 이 후배가 생각하는 우리의 할 일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후배의 말이 틀렸다고,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고요.

이후로 저는 어떤 이야기를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그로기 상태에서 더 이상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은 이상한 말들을 내밷었습니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발생한 자기방어기제였는지, 무었이였는지는 몰라도 제가 이렇게 핑계를 대는 와중에도 스스로 이 말들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으면서도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부끄러웠습니다.

"그건 그런데... 이게 이 모델에 나가면 플래그쉽 모델 서비스가 이 모델보다 오히려 비교 열세가 되고, 주절주절주절... 그러면 플래그쉽 모델 서비스 기획도 갑자기 변경될꺼고, 주절주절주절... 또 그러면 이 모델 타깃 특화가 더 이상 아닌게 되고, 주절주절주절....."

결국 후배는 마지막으로 저에게 KO 펀치를 날렸습니다.

"그러면, 대리님이 안하신다면 저 혼자라도 공문 보내고 회의 소집할께요."

저는 넉다운이 되어 버린 숨긴채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같이 추진해 보자는 말을 남기고 휴게실로 갔습니다. 휴게실 자판기에서 음료수 한 잔을 뽑아 놓고 후배와 주고받은 말들을 되새기기 시작 했습니다.
처음에는 후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괘씸한 것 같았고, '어디 해 봐라. 그게 되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음료수 한 캔을 다 마실 때 즈음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한 없이 부끄럽기 시작 했습니다. 저도 몰랐던 저의 속 마음을 후배의 말을 통해 제가 알게된 것 같았습니다.

'난 기획 담당자가 아니야. 그냥 기획되서 개발중인 것 들 잘 가져다 쓰면 되.'
'더 좋아지건 말건 난 모르겠고, 그냥 딱 계획된 것만 문제없이 탑재될 수 있게 하자.'
'지금도 바쁜데 일 더 벌려봐야 좋을 것 없어.'

라는 생각이 마음 깊은 곳에 있었는데, 저는 제 마음도 모른채 후배의 제안에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보였던 것이였습니다.

그 때 시간이 밤 10-11시 즈음이였는데, 이미 시간도 많이 늦었고, 더 이상 일을 할 만한 상태도 아니였고, 집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캔맥주라도 하나 사 마셔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아 퇴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 상황에서 후배의 얼굴을 다시 볼 자신이 없어 후배의 퇴근버스 막차 시간에 맞춰 30여분 가량을 휴게실에 더 머물러 있다가 사무실로 돌아 갔습니다.


만약에... 만약에 제가 그 때에 조금 더 도전적이고 진취적으로 일을 했다면, 적어도 선배나 후배에게 그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라도 제 마음을 다잡고 일했다면 어땠을까요?

워낙 SW 개발 일을 좋아하고 즐기기에 여전히 마음 속에 무언가 2% 부족함을 느꼈을 수도 있지만, 또 어쩌면 지금 제가 저의 일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기듯이 그 때에도 제 업무와 새로운 도전들을 즐기면서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일이 너무 좋고, 도전과 그에 따른 성취감에 빠져 아직도 한국에서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건 제가 적극적으로 저의 업무를 대했다면 그 시절의 기억들은 지금보다는 더 좋은 추억들로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부끄러움을 안겼었던 선배와 후배, 두 분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아직 회사를 다니고 있는 선후배나 동기들과 연락할 때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해 듣습니다. 두 분은 저에게 '넌 그냥 빵구 안나게 일하는 것 같아.' '그게 우리 할 일 아니에요?' 를 말 해주었을 때의 마음가짐을 아직도 가지고 계신듯, 이미 조기 승진도 하셨고 지금도 회사생활을 아주 잘 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모든 인연들은 인생의 스승이라고 하는데, 이 두 분은 적어도 다른 인연들 보다는 저에게 더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안겨준 스승들입니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약 5년간의 시간은 한 때라고 말하기에는 커리어 빌드업의 기반을 다지는 너무나 중요한 시기인데,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마음의 벽을 닫아 그 시기를 스스로 인생의 암흑기로 만든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동시에 그 때의 고통과 시련이 지금 저를 캐나다로 인도했고, 캐나다에서 삶과 일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기에 고마운 경험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삶에 있어서 모든 경험은 그 영향이 크건 작건 삶의 자산이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우연하게 선배와 챗을한 덕분에 제 기억 깊은 곳에 있던 부끄러움 두 가지를 다시 꺼내오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이 부끄러움을 말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은 이러한 부끄러움이 없게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